2016년 3월 구 국립서울병원이 지금의 현대식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재탄생했다. 사실 국립서울병원은 1989년부터 다른 부지로 이전이냐 기존 부지에서 현대화냐를 놓고 20년 동안 주민 갈등에 시달리다가 보건복지부의 주도로 구성된 갈등조정위원회를 통해 ‘종합의료복합단지 건설안’에 대해 주민 합의를 도출해 냄으로써 묵은 갈등을 풀 수 있었다. 그 후로도 6년 동안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역 이기주의로 갈 곳 없는 정신병원
2016년 첨단 시설과 현대식 건물, 체계적 진료 시스템, 우수한 의료진 등을 갖추고 재탄생한 국립정신건강센터(전 국립서울병원). 그런데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에 걸친 갈등과 인내가 필요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전신인 국립서울병원이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에 들어선 것은 1962년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 정신병원으로서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시절 정신질환 치료의 역사를 열었으며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기에 형편이 어려운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큰 의지가 되어 주며 공익에 기여해 왔다. 그런데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설은 노후화되고 환경이 열악해져 새로운 시설과 장비 등으로 현대화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1989년 4월 ‘국립서울병원 현대화 기본계획’을 수립했으나 이때부터 주민들의 강도 높은 이전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국립서울병원은 이 지역을 떠나라!”
20년에 걸쳐 이어질 갈등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지방선거 때마다 국립서울병원을 이전하겠다는 공약이 남발되곤 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광진구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국립서울병원이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국립서울병원은 절대 우리 지역에 들어올 수 없다!”
국립서울병원 측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을 추진해 보았지만 언제나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광진구에 남지도 떠나지도 못한 채, 세상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국립서울병원 현대화를 둘러싼 갈등과 그 해결과정의 산 증인인 국립정신건강센터 남윤영 기술서기관(전 국립서울병원 기획홍보과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이냐, 그 자리에서의 현대화냐를 놓고 세월이 갈수록 갈등이 더 심해졌습니다. 지역주민과 단체들이 병원 앞에 와서 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반복되었습니다. 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정신질환 치료의 역사는 이어지기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낙후된 시설과 열악한 환경으로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쌓이고 자살, 우울증, 학교폭력 같은 정신건강이 관련된 사회 이슈가 되고 있었지만, 낡은 국립서울병원은 국가의 정신건강 위상을 상징하는 듯 했고 지역 이기주의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
끝없는 대화 그리고 조정
“국립서울병원 갈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나서서 조정을 하십시오.”
20년 동안 묵은 갈등이 이슈화 되자 2008년 12월 국무총리실에서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근거로 보건복지부에 갈등조정을 위한 기구 설치를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09년 2월 지역주민, 보건복지가족부, 광진구청, 갈등관리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갈등조정위원회가 구성됨으로써 모두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지혜가 담긴 대안을 찾는 데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
“본격적인 갈등조정위원회 활동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는 기본적인 방향을 정했습니다. 광진구 외부로 이전 → 광진구 내 대체 부지로 이전 → 현부지에서 재건축 순으로 검토하되, 최종적으로는 주민보고회를 개최하여 정확하게 알리고 주민 의사 확인 및 동의를 받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남윤영 과장의 말처럼 갈등조정위원회는 험난한 항해를 시작하면서 기본적인 방향을 정했는데 무엇보다도 주민의 의견을 우선시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광진구 주민들은 여전히 “재건축이고 현대화고 다 필요 없으니 무조건 광진구를 떠나라!”는 강경 입장이었으므로 갈등조정위원회에서는 대체 부지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추천된 해당 지역마다 농림지역이거나 개발제한구역이어서 신축이 불가능하거나, 지방자치단체 반대, 접근성 등 이전 부지 조건에 부적합하여 결국 대체 부지 마련에 실패하고 말았다. 대체 부지를 못 구한다면 결국 기존 부지에서 재건축 및 현대화하는 길밖에는 없었다. 갈등조정위원회는 최종적으로 기존 부지에 국립서울병원을 포함하여 국립정신건강연구원, 의료행정타운, 의료바이오비즈니스센터로 구성되는 종합의료복합단지를 새로 건설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안을 마련하여 주민들에게 제안하였다.
“국립정신건강연구원 방안은 사실 오래 전부터 주민들께 제안하던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회의장에서 집어던지며 반대를 하셨죠. 하지만 대체 부지 마련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2009년 10월을 넘기면 기본설계가 불용처리가 되어 현대화 사업 마저 불가능해지는 시점이 되다 보니 복지부는 국립정신건강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종합의료복합단지라는 기존보다 발전된 계획을 제시하게 되었고 주민들도 이 사업 계획이 지역 발전을 위해 유익하다는 현실적 판단을 하게 되신 것이죠.”
갈등조정위원회가 구성된 지 만 1년이 지난 2010년 2월 제31차 갈등조정위원회에서 마침내 ‘종합의료복합단지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오랜 갈등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지역도 살고 병원도 살고
오랜 갈등을 원만하게 풀 수 있었던 데에는 주민 의견을 최우선으로 하는 갈등조정위원회의 운영 방향에 그 성공요인이 있었다. 남윤영 과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갈등조정위원회 회의가 점점 격해질수록 우리는 주민 대표뿐만 아니라 일반 지역 주민들도 회의에 참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진행 과정 및 결정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또한 갈등조정위원회에서 논의된 사항들에 대해서는 주민설명회 및 주민참여형 여론조사, 정보제공형 여론조사를 수행하여 논란을 방지하였습니다.”
협약 체결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로부터 또 다시 6년이라는 힘겨운 세월을 보내야 했다. 추가적인 난관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종 합의 결과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행정자치부와의 직제 개편 협의, 예산 확보를 둘러싼 문제, 기획재정부의 간이타당성 재조사 및 예비타당성 조사 등 난관에 부딪쳤으나 끈질긴 협의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2016년 국립서울병원 연구 및 부속시설을 준공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개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2단계 사업으로 진행되는 종합의료복합단지는 2018년 말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며, 2019년부터 보건 및 의료 관련 공공기관 8개소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처럼 오랜 갈등 끝에 새로 태어난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우리나라 정신건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한편, 지역경제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