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동안 경부고속도로 등으로 인해 통행에 불편을 겪어온 경주시 광명윗마을.
한국도로공사에서 도로 확장 공사까지 시작하자 주민들은 결사반대를 주장하다 급기야 국민권익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현장조사를 통해 관계자들의 요구를 파악한 후, 한국도로공사의 피해도 최소화하면서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는 한편 마을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창의적 중재안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45년 동안 도로에 막힌 마을
“도로 확장 공사를 한다고?”
2015년 봄. 경주시 광명윗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무려 45년 동안 경부고속도로와 국철 중앙선으로 인해 통행 불편을 겪어 온 것만 해도 억울한데 확장까지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내막은 이러했다.
경상북도 경주시 광명3통과 4통은 같은 생활권이었는데, 1970년 경부고속도로와 국철이 들어서자 갈리게 되었다. 광명 3통(경부선을 기준으로 아랫마을) 주민들이야 통행이 더 편리해졌지만 광명4통 즉 경부선 위쪽에 위치한 광명윗마을은 훨씬 불편해졌다. 시내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은 좁은 지하통로뿐, 사실상 이웃마을이나 경주 도심과 단절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45년이 흘렀다.
이런 마을에 한국도로공사가 도로 확장 공사를 시작하자 마을 사람들이 쌓인 불만이 터지고 만 것이다. 확장 공사
가 진행되면 기존보다 3m나 높게 성토부가 올라가는 데다 방음벽까지 올라가면 14m나 되니 앞으로 겪게 될 불편이 불 보듯 뻔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때까지도 경부선 때문에 이웃마을이나 도심하고 단절되다시피 했는데, 도로를 확장한다고요? 우리는 담장에 갇혀 살란 말입니까? 숨통은 터 주어야죠!” 하고 분통을 터뜨리며 한국도로공사에 민원을 제기했다.
“3m 높이의 성토구간 200m를 교량으로 변경 시공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교통에 큰 불편을 초래하고 이웃마을이나 도심과도 단절됩니다!”
마을 주민들은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주민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도로공사 입장에서도 연일 계속되는 주민 반대와 시위로 인해 공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 더구나 경상북도에서 주민들의 유일한 통로인 지하통로가 있는 지방도 904호선을 이전하겠다고 나오면서 주민들의 원성은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제3자의 합리적 중재
한국도로공사와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경주 광명윗마을 사람들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신청을 받은 국민권익위원회는 고충민원 해결의 필요를 느끼고 조사관을 파견하여 갈등의 양상을 파악하였다. 우선 주민들의 요구는 분명했다.
“경부고속도로가 기존보다 3m 높은 성토부로 건설될 경우 마을이 더욱 고립되므로 단절 해소를 위해 성토 구간을 교량으로 변경 시공해 주십시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에서는 불가 입장을 고수하려 했다.
“현 지하통로는 폭 8m, 높이 4.5m인데, 이를 폭 19m, 높이 4.8m 크기의 교량으로 확장할 예정이기 때문에, 향후 주민들의 통행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주민들이 요구하는 대로 성토부를 교량화한다고 해도 중앙선 철도가 어차피 가로막고 있으니 단절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성토부 교량화는 수용할 수 없습니다.”
사실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성토 구간 200m를 교량으로 변경 시공하는 데에는 약 90억 원의 추가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도로공사로서는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한국도로공사 측에 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며 일부 수용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일보 양보를 권했다. 그러자 한국도로공사에서 일보 양보의 가능성을 시사해 왔다. 국민권익위원회 유택종 조사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도로공사에서 기존의 불가 방침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지만 원만한 협상을 위해 성토구간 100m 정도는 교량으로 변경 시공할 수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주민들이 요구한 200m에는 못 미치지만 일단 양보를 이끌어 낸 것이니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죠.”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일보 양보를 받아낸 국민권익위원회는 다시 주민들 설득에 나섰다.
“주민들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웃마을, 경주시와의 소통이 아닙니까? 그런데 한국도로공사에서 100m의 성토부를 교량화하겠다고 양보했으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70m의 교량화로도 충분히 이웃마을, 경주시와의 단절을 막을 수 있습니다. 교량도 교량이지만 철도를 폐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도로와 나란히 있는 철도가 사라져야 단절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폐선이 예정되어 있다니까 경주시와 협의하여 조속히 폐선하도록 하고, 그 곳을 주민들을 위한 복지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마을의 이익에 더 부합됩니다.”
한국도로공사도 마을 주민들도 국민권익위원회의 중재안에 동의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고 2015년 8월 26일 현장조정회의를 개최하여 양측에서 조정서에 서명함으로써 치열하던 갈등은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원스톱으로 여러 문제 해결
국민권익위원회의 중재 덕분에 자칫 장기전이 될 뻔한 갈등이 해결되고 한국도로공사는 공사를 계속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준공에 차질이 빚어졌을 경우 고속도로를 필요로 하는 불특정 다수가 겪게 될 불편을 방지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그만큼의 간접비용 발생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을 주민 입장에서도 교통 및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던 오랜 고충이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침체되어 있던 마을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요즘 광명윗마을 사람들은 주변에 위치한 신경주역사, 양성자 가속기 연구센터, 신경주역세권개발사업과 연계한 마을 발전이 이뤄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모두가 원만한 결과를 낳기까지 한국도로공사뿐만 아니라 관계기관들도 힘을 모았다. 업무를 담당했던 국민권익위원회 유택종 조사관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번 중재를 통해 한국도로공사뿐만 아니라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는 경부선 철로를 즉시 철거해 주기로 했고, 경상북도에서도 지방도 이설 계획을 조속히 확정하는 동시에 추가되는 폭 19m 교량 이전 비용을 부담하기로 하는 등 여러 기관 간 협업으로 지역의 묵은 민원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창의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지역의 해묵은 민원을 원스톱으로 해결함은 물론 여러 관계기관의 협조까지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던 당사자끼리의 갈등을 제3자의 적절한 개입과 중재안을 통해 원만하게 해결한 결과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