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2013년 7월 논산시에서 ‘충청유교문화원 건립 기본계획’을 수립한 이후 연산면과 노성면의 갈등이 불거져 나왔다. 연산면은 자기 지역이 정통이라면서 유치를 주장하였고, 노성면은 기본계획에 노성면으로 되어 있으니 원안대로 추진하라고 주장했다. 논산시에서는 외부 전문가들로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중립적 입지를 선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또한 개별적으로 주민들을 만나 대승적 양보를 촉구하고 상생 대안을 제시하면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현대판 노론 VS 소론 갈등
충청남도 논산시는 주민들 간의 갈등으로 오랜 시간 내홍을 겪었다. 논산 ‘충청유교문화원’(이하 유교문화원) 입지를 두고 두 지역 주민 간에 갈등이 고조되었기때문이다. 발단은 충청남도에서 2013년 7월 수립한 ‘유교문화원 건립 기본계획’이었다. 이 기본계획안에 유교문화원의 입지로서 ‘노성면’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갈등의 단초였다. 그때부터 무려 2년 2개월 동안 노성면과 연산면은 마치 조선 후기 노론(老論)과 소론(小論)이 그랬던 것처럼 치열하게 싸우게 되었다. 연산면 측의 주장은 이러했다. 조선시대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 등이 바로 이 연산의 김장생·김집의 문하에서 수학한 인연이 있었다.
“충청 유학은 연산의 돈암서원을 요람으로 사계 김장생과 제자인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등으로 확산되어 충청권 일원에 유학이 융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 연산면이 유학 발전 요람의 중심지이므로 이곳에 유교문화원을 건립해야 합니다.”
연산면은 자기네가 정통이라고 주장했지만 노성면 측에서는 천만의 말씀이라는 입장이었다. 노성면은 처음 기본계획에 되어 있는 원안대로 추진하라고 강하게 촉구했다.
“논산시가 2013년 7월에 만든 ‘충청유교문화원 건립 기본계획’에는 유교문화원을 노성면에 2018년까지 건립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산면이 거론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요? 전문연구기관인 충남역사문화원에서 이미 연구를 마쳐 제출한 안을 논산시가 무시하고 새롭게 연산면을 추가한 것입니다. 원안대로 해 주십시오!”
양측의 주장이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지만 정작 논산시에서는 “시민들의 여론 수렴 등을 통해 공정하게 장소를 선정하겠으니 지켜봐 달라”며 대답을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연산면에서 처음 유교문화원 건립부지 변경을 요구하며 민원을 제기했을 때 논산시가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여 초기 대응에 아쉬움을 남기는 바람에 갈등을 키운 면이 없지 않았다. 유교문화원 건립이 두 지역 종중 간의 이해관계로 난항을 겪었던 것이다.
지역 자존심이냐 상생이냐!
논산시는 더 이상 두 지역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양보하는 후보지는 충청유교 문화권 광역관광 개발사업과 연계하여 시에서 적극 지원하도록 하겠다.”면서 양보를 촉구했지만 건립부지 선정을 둘러싼 노성면 vs. 연산면 갈등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종중 간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면서 더 심화될 뿐 한 치의 양보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러는 동안 논산시는 두 지역 공동의 민원 제기 대상이 되고 말았다.
노성유치추진위원회는 2015년 4월 논산시에 대한 불만으로 청와대 비서실 및 감사원에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원안(노성 입지)대로 추진되도록 도와 달라!”며 탄원서를 제출했다. 갈등이 점점 대외적으로 불거져 나오자 문화체육관광부와 충청남도 등 관계기관에서는 논산시의 사업 부진을 질타하고 행정력에 대한 의구심을 표출하면서 압박해 왔다. 심지어 “사업추진 의지 부족과 주민 갈등에 대한 대안 부재”를 이유로 유교문화원 건립 국·도비 지원액이 전액 삭감되는 일이 일어났다. 논산시 미래사업과 한태일 주무관은 “어렵게 정부로부터 유교문화원의 사업예산을 확보했는데 유교문화원 입지 선정도 못하고 있다 보니 2016년도 국·도비 지원액이 삭감되고 말았다.”면서 안타까움을 전했다.
논산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했다. 2015년 유교문화원 건립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유교문화원 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를 통해 최종 입지를 결정할 것을 천명했다. 입지선정위원회는 유교문화원 건립과는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역사학자, 유림 관계자, 시 관계자, 도시계획 전문가 등 외부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되었다. 6월 30일 제1차 입지선정위원회가 개최되자 노성면, 연산면 두 지역 모두 들고 일어났다.
그해 7월 무더위가 한창일 때 연산면 주민 30여 명은 시에 직접 몰려와 “위원회 구성이 노성 측에 유리하니 전면 재구성해 달라!”며 항의했다. 이에 질세라 며칠 후 노성면 측에서도 주민 50여 명이 찾아와 “입지선정위원회를 왜 하는 것이냐? 이미 노성면으로 기본계획에 되어 있으니 원안대로 추진하라!”며 시장실 앞에서 시장 면담을 요청하며 시위를 벌였다. 갈등은 누그러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승적 양보와 상생의 발전을!
갈등이 깊어질수록 갈등 중재를 위한 논산시의 물밑 작업도 더 치열해졌다. 논산시는 입지선정위원회와는 별개로 연산과 노성 지역의 주민 대표와 문중 대표들을 지속적으로 만나 부지결정 방법을 논의하고 대승적으로 한 쪽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입지 선정에서 탈락된다고 해도 충청유교문화권 종합개발과 연계하여 대안 사업을 추진할 것이니 지역 발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입지 선정 과정 또한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유지할 것입니다. 그러니 대승적 차원에서 입지선정위원회의 결정에 동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양 지역추진위원회에게 입지선정위원회에서 직접 자기 지역의 유치 논리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2015년 9월 16일 제2차 입지선정위원회에서 최종 부지로서 노성면이 선정되었을 때는 그 선정 결과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갈등 해결의 성공 요인에 대해 한태일 주무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양측의 대표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행정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소통한 것이 가장 주효했습니다. 또한 입지선정위원회 위원에 대해 각 지역이 제척권을 갖도록 하고, 회의에 참석해서 직접 자기들의 유치 논리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도 효과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지역주민의 집단행동 및 반발에도 일관된 행정운영을 기하였던 미래사업과의 행보도 중요한 성공요인이었다. 또한 논산시는 입지선정위원회를 통한 최종 부지 결정으로 끝나지 않고 철저한 사후관리에 들어갔다. 갈등의 불씨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주민 대표들을 만나 부지 결정 과정과 결과 그리고 사후 계획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노성면에는 애초의 계획대로 유교문화원 건립을 통해 유교에 대한 연구와 교육 지원을 약속하고, 연산면에는 문화와 휴양의 지역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을 약속하는 등 주민과 소통하며 마음을 어루만졌다. 노성면은 유교문화원 건립을 유치했으니 승, 연산면은 선정에서 탈락한 것이 아니라 대안사업을 약속받고 장기적 관점에서 개발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느니 승이었다. 패자가 없는 타협, 그것이 논산시가 이뤄낸 갈등 해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