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YMCA 이웃분쟁조정센터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층간소음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주민자율조정 모델을 제시했다. 첫 번째 대상 지역으로 선정된 은평구의 제각말아파트의 주민들은 주민자율조정위원회인 ‘이웃사랑해’를 구성했다. 주민 분쟁 발생 시 나서서 중재하는 한편,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마을공동체를 활성화 시키는 데 앞장서는 이웃사랑해 덕분에 제각말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 분쟁이 사라졌다.
공동주택 갈등 어떻게 풀까?
아파트, 즉 공동주택이 보편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잡아 감에 따라 공동주택의 이웃 간 갈등도 늘어가고 있다. 특히 층간소음 문제가 이웃 간 살인이나 방화로 확대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공동주택 갈등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층간소음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자 서울 YMCA 이웃조정분쟁센터에서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바로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갈등을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대해 서울 YMCA 이웃조정분쟁센터(이하 조정센터)의 주건일 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웃 간의 분쟁 발생 시 당사자들끼리 해결이 어려우면 최종적으로 법원에 소송을 구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죠. 시간과 비용,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관계 악화 등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소송을 통한 해결보다는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특히 관계적 차원에서 갈등을 예방하고 풀어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조정센터는 ‘주민자율조정’ 모델을 구축할 첫 번째 시범지구로서 은평구 제각말 5단지 은평뉴타운 푸르지오아파트(이하 제각말아파트)를 선정했다. 반대하는 주민도 있었지만 이웃 간 갈등을 주민 스스로 해결해 보자는 취지를 이해시키면서 주민자율조정위원회 구성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주민들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특히 조정센터는 민관 협력으로 그 모든 과정을 진행해 나갔다고 주건일 팀장은 설명한다.
“저희는 서울시, 은평구, (사)평화를만드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등의 단체와 함께 민관 협력 네트워크를 구성했습니다. 민관이 협력하되 주민들보다 앞서지는 말자는 것이 저희의 모토였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만 주력하고자 했습니다.”
민관협력 네트워크는 수차례의 주민간담회 등을 통해 주민들과 소통해 나갔고, 특히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주민들의 의견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알아보았다. 설문조사 결과 90% 이상의 주민이 “층간소음을 겪어 보았다.”고 답했으며, 그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그냥 삭힌다.”는 대답이 제일 많았다. 이 설문조사를 통해 잠재된 갈등 요소가 얼마나 많은지 또 그에 대한 자율 조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주민들 스스로 느낄 수가 있었다.
공동체가 살아야 대화가 통한다!
주민간담회, 면담, 설문조사 등 다양한 소통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진 결과 2013년 5월 드디어 제각말아파트의 주민자율조정위원회 ‘이웃사랑해’가 구성될 수 있었다. 주민자율조정위원회 ‘이웃사랑해’의 위원으로는 아파트 동호회원, 경로당 어르신 등 12명의 다양한 마을 주민들이 참여했다.
“층간소음 갈등은 어떻게 극단적으로 표출될까요? 또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
“마을 주민들이 좀 더 평화롭고 친밀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처럼 주민자율조정위원회는 갈등의 요소를 제거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한 화두를 스스로 던지면서 끊임 없이 대화하고 토론해 나갔다.
조정센터에서는 주민들의 만남을 지원하는 한편, 주민 위원들의 마인드와 역량 강화를 위해 기본 교육, 심화 교육 등을 실시했다.
“교육 내용은 갈등에 대한 이해 및 해결 사례, 주민자율조정위원회의 역할, 층간소음 관련 법규, 마을공동체 활성화, 갈등 사례를 중심으로 한 조정 실습 등이었습니다. 층간소음 해결을 위한 주민 아이디어 워크숍도 가졌죠.”
주건일 팀장의 말처럼 주민 위원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에 임했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 ‘주민협약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 주민협약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뛰고 싶은 아이들은 운동장(놀이터)으로 보내기, 집안에서 의자, 책상 등 가구를 옮길 때 끌지 않기, 야간에는 (진공)청소기를 사용하지 않기, 애완동물이 짖지 않도록 하기, 음향기기, 악기 등은 큰 소음이 없도록 하기, 큰소리로 고함을 치거나 큰 목소리로 떠들지 않기, 소음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 이웃에게 미리 양해 구하기, 소통게시판 적극 활용하기, 층간소음 문제는 배려와 이해로 풀기, 층간소음을 비롯한 이웃 간 문제를 해소하고 싶을 때는 이웃사랑해(주민자율조정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하기!”
모든 항목이 주민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 약속인 만큼 주민들의 협조가 잘 이루어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제각말아파트 사람들은 이웃사랑해를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로 뭉치고 있다. 주민학교, 공유서가, 북카페, 텃밭 가꾸기, 녹색 장터, 관리비 절감 프로그램 등을 함께 하며 주민들은 마을공동체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상시적으로 이웃 간 분쟁 조정 신청을 받고 있지만 정작 신청을 하는 주민들은 거의 없다. 대화와 배려, 소통이 살아있는 마을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