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의 꿈을 안고 대학에 진학하여 설레는 새내기 시절을 보내다가 불의의 사고로 중증 장애인이 된 사람. 한때 절망에 빠지기도 했으나, 한 사람의 절망을 넘어 모두의 희망을 바라보기 위해 다시 일어선 남자, 이재균 씨. 그는 장애를 딛고 일어나 장애인들의 꿈을 일구는 야학교사로 제2의 삶을 힘차게 만들어 가고 있다.
배워서 남 주는
아우름 야학
강원도 속초에는 야학이 몇 곳 있다. 그런데 그 야학 중 “배워서 남 주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운영하는 야학이 있다. 바로 ‘아우름 야학’이다. 모두 자기 것 챙기기에만 급급한 세상인데 배워서 남 주다니? 아우름 야학을 세우고 교사로서도 활동하고 있는 이재균 씨는 말한다.
“저희 아우름 야학의 꿈은 배우서 남 주는 거예요.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거죠.”
사실 그가 이런 고백을 당당하게 할 수 있기까지 10년이라는 좌절의 세월이있었다. 그는 한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의사의 꿈을 안고 대학에 진학한 평범하고 꿈 많은 대학 새내기였다. 치기공과 전공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인생은 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급작스럽게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다. 사고로 인해 그는 중증 장애인이 되었고, 치과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건강도 꿈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사고는 저의 모든 꿈을 빼앗아 가버렸어요. 혼자서 서지도 못하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어떻게 치의학 공부를 하고 다른 사람의 치아를 치료해 줄 수 있겠어요? 저에게는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죠. 사고 이후 10년 동안 집에서만 생활했습니다. 장애인이 된 제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었으니까요. 저 자신조차도 내 모습을 보기 싫었죠.”
그 암흑의 터널 끝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빛의 통로를 발견한 것일까?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날 즈음의 어느 날, 그에게 한 가지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그래! 그래도 나는 대학 문턱에라도 가 봤잖아, 꿈이라도 꿔 봤잖아. 그러나 꿈조차 꿔 보지 못한 사람도 있어. 내가 좌절만 하고 있다면 그런 분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우연히 떠오른 이 생각이 이재균 씨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비록 몸은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의 인생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꿈도 꿔 보지 못하고 꿈을 포기한 채 대학 진학을 포기한 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지식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절망과 다시 찾은 희망의 결과로 세워진 것이 ‘아우름 야학’이었다. 자신이 가진 지식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세워진 아우름 야학은 말 그대로 배움을 원하는 모두를 아우르는 학교이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거나 배움을 원하고 꿈을 꾸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학교인 것이다.
아우름 야학은 문해반, 검정고시반, 수능 대비반을 중심으로 IT 교육과 재활 수업을 진행한다. 어느덧 이제는 열매를 맺게 되어 2009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16명의 검정고시 합격자와 대학 진학자 4명을 배출하였다.
장애인 인권의
메카이고자...
이재균 씨가 야학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바로 장애인들의 편의다. 아우름 야학을 1층에 세운 것도 휠체어 장애인들이 편하게 오갈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속초에는 야학이 몇 군데 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2, 3층에 위치하고 있어요.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 아니면 휠체어 장애인분들은 도저히 다닐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또한 그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중고차를 마련해 학생들을 위해 운행하고 있다.
“학생 중에 휠체어 장애인이 계셨는데, 그분이 집에서부터 야학까지 너무 힘들게 등하교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실 휠체어 장애인이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오는 일은 비장애인 분들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스러운 일이거든요. 그래서 이동수단을 마련한 거예요.”
배움의 열정 하나로 여건과 장애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니 이재균 씨는 빨리 그런 고생을 덜어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자신이 장애인이다 보니 장애인들의 고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재균 씨는 속초가 장애인 인권의 메카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그는 뜻있는 이들과 함께 ‘장애인 인권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아무래도 영화라는 매체가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 영화제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장애인들 스스로 영화 제작 및 편집을 통하여 자존감을 세우는 기회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공존하는 속초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장애인 인권영화제’는 2014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3회째를 맞이했다. 올해는 8월 말경, 속초 엑스포공원 광장에서 개최되었다. 비록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제가 장애인들의 고충을 알리고 그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넉넉하게 하는 인권의 메카로 자리 잡기를 그는 소망한다.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공정과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