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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교수의 한국어 교실! 언뜻 보면 의아스럽지만 바로 경영학교수인 이상만 씨가 다문화 가족을 위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의 현장을 말한다. 수업이 끝나면 그들에게 따뜻한 저녁을 대접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다문화 가족이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르기까지 이상만 씨의 봉사가 다리가 되고 있다.
다문화 가족의
한글 길잡이
“Hi? Hello?” “How are you?” 얼핏 들으면 영어회화 강의실이라 착각할 만하다. 하지만 이곳은 영어회화 교실이 아니라 한국어 교실이다. 전라북도 전주시 안디옥교회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다문화 가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실’인 것이다. 그런데 왜 영어로 인사를 나누는 것일까? 이 한국어 교실을 처음 개설하고 지금까지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봉사하고 있는 이상만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국어 교실이 열리면 처음에는 한국어를 거의 말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다문화 가족분들은 한국어로만 진행되는 한국어 교실을 너무나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문화 가족을 위한 ‘한국어 교실’은 처음 한 달 정도는 영어로 강의가 진행된다. 다문화 가족들에게 낯선 한국어 대신 익숙한 영어로 다가가는 것이다. 영어로 어디에서 왔나요?, 한국에는 어떤 이유로 왔나요?, 누구와 함께 한국에 왔나요?, 결혼은 했나요? 하고 먼저 묻는다. 그러면 그들이 천천히 영어로 대답을 하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겁니다. 먼저 마음이 열려야 하거든요. 이렇게 마음을 여는 과정도 없이 바로 수업에 들어가면 수업 효과도 적어지고 그분들이 마음을 열고 한국 사회에 정을 붙이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다가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자연스레 한국말로 인사를 나눠본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식사는 했나요? 이렇게 간단한 인사를 한 국말로 건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한 달 동안 배운 한국말을 생각하면서 큰 어려움 없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마음이 열림에 따라 입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만 씨가 한국어 교실을 이렇게 운영하기 때문에 한국어 교실 교사로 봉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영어 실력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어 교실 교사로 자원하는 이들 중에는 왜 영어실력이 필요한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이상만 씨의 수업 방향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곤 한단다.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어가 필요한 것은 사실 한국사회에서 소통하고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이니, 무조건 지식만 가르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테니 말이다.
이상만 씨는 전북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경영학 교수인 그가 왜 엉뚱하게 한국어 교실을 열었을까?
“경영학을 가르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국인 노동자들의 생산성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어떻게 하면 외국인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높아질까? 생각하다 보니, 그분들의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분들이 한국을 낯선 곳으로 여기지 않고 한 가족이라는 연대의식을 갖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상만 씨가 한국어 교실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한국어가 아니다. 한국어 교실을 매개로 다문화 가족의 친구가 되어 주고 또 그분들이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하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 한국어 교실은 매주, 토요일 오후 3부터 5시까지 있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수업 시간보다는 수업 이후에 있는 저녁식사를 더 기대한다. 왜냐하면 이상만 씨가 준비한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습득의 가장 좋은 비결은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꼭 말해보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다 까먹지요. 그래서 학생들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한국말로 많은 대화를 나누죠.”
배운 것을 바로 써 먹게 하자! 이것이 이상만 씨가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는 노하우라 할 수 있는데,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한국어로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게 가장 효과적이란다.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상만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한국어 수업이 매주 토요일마다 기다려져요. 선생님은 우리를 편하게 대해 주세요. 가족처럼 우리를 여기시는 것 같아요. 저녁밥을 먹으면서 한 가족이 되는 것 같아요”
저녁식사 시간은 단순히 한국어 실습 시간만은 아니다. 한국어 교사들과 다문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고 더 나아가 다문화 가족들이 소외감에서 벗어나 한국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유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사회에서 아직까지 이런저런 차별이나 소외를 받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상만 씨는 한국어라는 소통의 도구를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고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경영학자의
노인복지 봉사
이상만 씨의 관심은 다문화 가족뿐만 아니라 지역의 노인들을 돌아보는 데까지 이른다. 경영, 경제 전문가로서 전주시 덕진구 종합사회복지관의 어르신들을 위해 오래 전부터 경제교육 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업에 참석하는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노인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 사회로부터 소외감을 많이 느끼거든요. 그런데 이상만 교수님 강의를 듣고 있으면 우리가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았다고 느껴져요. 우리 노인들이 어떻게 경제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배울 수 있고,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니까 자신감이 생기는 거 같아요.”
이상만 씨 강의의 목적은 어려운 경제 이야기만 가르치는 게 아니다. 어르신들이 새로운 사회와 경제 흐름에 대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알기 쉽게 가르쳐 드리고, 그럼으로써 어르신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소외감을 해소해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어르신들이 뿌린 씨앗이 열매를 거둔 결과이잖아요. 자식들 키우고 돈 벌어 시집 장가 보내느라 건강도 많이 잃으셨죠. 그러느라 세상 돌아가는 경제이치를 잘 모를 수 있죠. 그래서 그 분들이 알기 쉽게 가르쳐 드리는 것뿐입니다.”
강의를 듣는 어르신들은 “이런 경제 강의를 진작 좀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노. 돈이 돌아가는 이치를 배우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알거 같다!”며 입을 모은다. 이상만 씨의 한국어 교실이 다문화 가족들에게 한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주는 것처럼 경제학 강의 또한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르신들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이다.
“다문화가족, 외국인노동자, 어르신들 모두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구성원들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분들이 머뭇거리지 않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작은 다리를 놓아드리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 다리가 많아질 때 우리 사회에 차별이나 갈등이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이상만 씨는 갈등과 차별을 넘어 더 큰 가족을 만들어 가는 우리 사회의 작은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