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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작은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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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장애인 딸을 의롭게 키우는 어머니 - 김영심 영웅
  • 등록일
    2017.04.04 16:21:15
  • 내용
    희망을 놓지 않으면 꿈은 이뤄진다

     

    김영심 씨는 선천성 질병과 장애를 가진 딸을 어려움 속에서 양육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교육학, 사회복지학, 아동학 등 4개의 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꾸준히 공부해 왔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아들이 차별받지 않고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질병과 장애를
    가진 딸


      강원도 속초에 살고 있는 김영심 씨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딸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이다. 그녀의 딸은 선천성 심장병과 폐쇄부전 등 많은 병을 치료받으며 예쁘게 커왔다. 하지만 그녀의 딸 민정 양(만 10세)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말은 “엄마”라는 말뿐이며 아직 걷는 것조차 쉽지 않다.
      민정 양은 김영심 씨에게 생명과도 같은 딸이다. 자신의 생명을 버릴 수 없듯이 자신의 딸 역시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딸이다. 그렇게 귀한 딸이지만 딸을 길러온 10년이란 세월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남모르는 양육의 아픔이많았던 것이다.
     
    수업 중인 김영심 씨

    경제적인 고충도 크고 육체적인 고됨도 적지 않았지만 사실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사람들의 편견이었다. 무심코 던진 다른 사람들의 말에도 상처를 받곤 했다.
      “2년 전에 있었던 일이예요. 딸과 같이 길을 걷고 있는데 한 어르신이 뒤에서 따라오더니 아이가 팔자걸음을 걸으면 허리에 좋지 않다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분에게 저의 딸 민정이는 이제 8살이 되었는데 걸음을 뗀
    지 이제 몇 달 되지 않았고 평생 처음으로 걷기 시작한 거라고 말해 주었죠.”
      이미 민정이의 몸은 초등학생의 몸을 갖고 있었지만 그녀의 걸음은 한 돌 지난 아이보다도 못한 걸음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민정 양과 어머니 김영심 씨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정이를 키우며 크고 작은 오해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충고를 해 준답시고 아이의 사정을 살펴보지도 않고 자기 말만 하고는 사라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참 안타까울 때가 많았어요. 장애아들을 위한 시설도 부족하고요.” 
      김영심 씨는 어린 장애아 딸이 갈 만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구하는 데 애를 많이 먹어야 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강원도 속초인데, 딸 민정이가 다닐만한 어린이집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장애인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 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었으면 해요. 저의 딸 민정이도 다닐 만한 곳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많은 기관과 책임자들을 찾아가 장애아를 위한 보호 및 교육시설의 필요성에 대해 호소하고 설득하곤 했습니다.”
      속초에는 장애아를 받아들이는 유치원이 이제야 생겼다면서 김영심 씨는 몸이 불편한 장애아들을 키울 수 있도록 관련 시설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힘들어도 버릴 수 없는
    엄마의 길


      어렵게 민정 양을 키우며 김영심 씨는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딸 민정이를 위해 한 수술만 해도 2~3 차례를 했으니 그 동안의 경제적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일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전국 이야기 대회 단체사진

    이력서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7군데나 지원했지만 입사를 못한 적도 있었다. 많은 실망을 안고 집으로 귀가하던 날 저녁 그녀는 딸 민정이와 나누었던 눈의 대화를 이렇게 기억한다.
      “엄마, 엄마, 왜 슬퍼해요. 왜 실망해요. 다시 해봐요. 엄마는 날 걷게 하려고 날 뛰게 하려고 6년 동안 업고 다니면서 물리치료, 감각치료를 받게 했어요. 그 정성이면 엄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딸이 위로해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어요.”
     
    김영심 씨의 딸 민정양

      그날 민정이는 엄마의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해 주려는 듯 비록 정확하지 않은 어눌한 발음이지만 “엄마, 엄마!” 하면서 그녀를 안아 주었다. 딸과 눈으로 대화를 나누고 나서 김영심 씨는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용기를 내어, 인근 초등학교에 이력서를 내었고 마침내 방과 후 코디네이터와 토요일 돌봄 강사로 뽑힐 수 있었다.
      “딸아이를 키우느라 힘이 들기도 했지만, 그 과정을 통하여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었고, 또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번 돈으로 민정이에게 처음으로 발에 맞는 신발을 사주던 날을 기억해요. 10년 만에 처음으로 사이즈에 맞는 신발을 딸이 신을 수 있게 된 것이었어요.”
      이후 김영심 씨는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고 경제 활동을 힘들게 해나가면서도 공부를 계속했다. 그 결과 교육학, 사회복지학, 아동학 등 4개의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제 곧 그녀는 대학원도 다니고, 딸을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민정이를 키우는 과정은 저에게는 배움의 시간이었어요.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딸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어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장애인에 대한 부족한 복지 등에 대해서도 눈을 떴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올해로 민정 양은 11살이 되었다. 그 동안 치료를 받으며 많이 호전된 덕분에 이제는 제법 걷게 되었다. 그러나 민정 양의 어머니인 김영심 씨는 민정 양의 치료를 위해 9년 가까이 업고 다니느라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생겼다. 양육의 훈장이었다.
      엄마의 희생적인 노력 덕분으로 민정양은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애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게 되었다. 2014년 9월에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성화 봉송주자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15년 6월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성화 봉송주자로도 참여하였다.
      김영심 씨는 지금도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장애아와 그들을 자녀로 둔 부모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싶단다.
      “희망을 놓지 않으면 꿈은 분명히 이뤄집니다.”
      그 희망이 있기에 김영심 씨는 오늘도 장애인 차별이 없는 사회, 장애아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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