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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작은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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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영어로 재능기부 하는 해외입양아 - 최승리 영웅
  • 등록일
    2017.03.27 15:37:05
  • 내용
    나의 재능을 조국을 위해 쓰다

     
    해외입양아로 자랐지만 자신을 낳아준 부모와 그 조국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자원입대한 최승리 씨. 그는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지만 연평도 사건 뉴스를 접하면서 조국에 봉사하겠다고 결심하고 자원입대했
    다. 군 복무 기간 동안 영어교실로 재능기부를 한 그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자신의 재능을 조국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군인이 된
    해외입양아


      병장 최승리 씨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대한민국 육군으로 자원입대한 해외입양아이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일본에 갔다가 부모님을 잃어버렸고, 그 후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것이다. 그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양부모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늘 고국 한국을 그리워하며, 한국의 친부모를 꼭 다시 만나기를 고대해 왔다. 그런 그가 성인이 되어 조국의 군에 입대한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기피하곤 하는 대한민국 군에 왜 자원입대했을까?
      “저는 한 순간도 저의 조국과 부모님을 잊은 적이 없어요.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친부모님을 만나면 자랑스러운 아들로 컸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서였고 다른 이유는 언젠가 조국으로 돌아가 조국을 위해 봉사를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꿈의 첫 번째 실현이 바로 대한민국 육군에 자원입대한 것입니다.”
      최승리 씨는 열심히 공부해서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늘 그에게는 해외입양아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의사라고 밝히면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지만 해외 입양아라고 밝히면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그는 많이 경험했다. 그는 그 편견을 넘어서고 싶었다.
      한 번은 의과대학 재학 중이던 시절, 그는 연세대 의과대학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 들어온 김에 힘들게 수소문한 끝에 모 방송국의 프로듀서의 도움으로 친부모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부대원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최승리 씨

      “저는 친부모님을 만나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해외입양아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위축되었던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의문들은 다 사라졌고, 제 자신이 누구인 지 나의 뿌리가 어디인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있게 한 부모의 조국, 또 나의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경례 중인 최승리 씨

      그렇게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심이 서는 순간 그는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도발을 당한 연평도 도발 관련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그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적의 공격을 받고 무고한 국민이 죽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는 대한민국 군에 입대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이다.


    재능기부로 연
    영어교실


      자원입대한 최승리 씨는 광주 모 사단의 의무병으로 자대배치 받았고 군 복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자원입대한 군 병영 생활이었지만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그로서는 적응하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 그는 이등병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 이등병이 되어 자대배치 받았을 때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제가 자라온 환경하고는 너무 달랐어요. 문화도 달랐고, 언어의 표현 방식도 달랐어요. 제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오해도 많았던 것 같고요. 하지만 그것도 군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문화와 언어가 달라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경험해 보았거든요.”
      처음 접해 본 병영문화를 잘 극복해가던 최병장은 어느 날 사단장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다른 장병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제안이었다. 업무를 마치면 개인정비 시간을 이용해서 영어를 가르쳐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달란트를 함께 나누고 직접적으로 장병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고 영어교실을 준비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주중 업무를 마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어교실을 진행하였다.
      “반응이 대단했어요. 저도 놀랄 정도였죠. 사단직할대에서 지원한 장병이 대략 200여명이나 되었죠.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했어요. 미국에서 자랐으니 미국발음 그대로였고, 수월하게 할 수 있었죠. 1시간 30분씩 되는 수업을 영어로 듣고 배우고 말하는 강의다 보니 장병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강의가 진행하는 동안에 사단장의 적극적인 지원도 있었다. 수업의 참여가 높고 진척이 있는 장병들에게는 포상도 따랐다. 크게는 휴가와 외박, 외출의 포상으로 수업의 참여는 높아갔다. 수업을 시작하고 몇 개월 단위로 토익이나 토플시험을 치러 성적이 우수한 장병을 대상으로 포상이 주어졌다.
      “많은 장병들이 저에게 고마워하고 격려해주어서 너무 감사해요. 의무병으로 군복무를 하며 장병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도 보람된 일인데, 제가 미국에서 살면서 써온 언어인 영어로 저의 조국과 장병들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다는 게 저에겐 큰 영광이에요. 군 생활 하다보면 영어를 다 까먹게 되는데 하루에도 얼마씩 영어공부하고 노력하는 병사들을 보면 더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영어교실을 1년 넘게 진행해 오는 동안 일병 최승리는 전역을 앞둔 병장 최승리가 되었다. 그는 13개월 동안 묵묵히 자신의 의무병으로서의 보직을 감당하는 동시에 장병들을 위한 영어강사로서의 봉사를 이어 온 것이다. 영어교실에 오랫동안 참여한 한 병사는 이렇게 고마움을 전한다.
      “군 생활 하다보면 자신을 개발하는 데에 둔해져요. 그런데 영어교실을 계기로 저도 영어를 열심히 하게 되었어요. 입대 전 하던 토익공부를 거의 까먹다시피 했는데, 영어교실을 통해 실력이 향상되어서 전역이 두렵지 않습니다. 최승리 병장 덕분입니다.”
      최승리 씨에게 군 복무 기간은 잃어버린 조국을 찾은 시간이었고, 그 조국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들이었다. 그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살아가게 되더라도 대한민국을 잊지 않고, 언젠가 또 기회가 되면 자신의 재능을 조국을 위해 쓰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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