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은 비범한 일이 아니라 평범한 일이라 말하는 이가 있다. 나눔과 봉사는 누구를 돕는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생색내는 봉사와 나눔을 거부한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삶이 행복하다면서 소외된 청소년과 장애우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또 언제든 달려가는 따듯한 슈퍼맨으로서의 삶을 자처하고 있다.
추자도 섬마을에
공부방 만들기
추자도는 제주도 북쪽 해상에 있는 작은 섬이다.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섬은 풍경이 아름답고 한적하여 휴양과 관광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 섬에 관광이나 휴양이 아니라 봉사를 위해 찾아오는 이가 있다.
바로 윤재춘 씨. 농협에 근무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인 그는 이곳에만 오면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된다.
“똑똑!! 안녕하세요. 지난 주 연락드렸던 제주시 자원봉사센터의 윤재춘입니다!”
“와아! 드디어 오셨다!”
이번에 그를 반가이 맞이하는 하는 이는 추자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5학년 남학생 영준(가명)이다. 영준이는 그 동안 책상과 걸상이 없어 식사 때 사용하는 작은 상을 놓고 공부해 왔다. 그런데 윤재춘 씨가 책상과 걸상을 가지고 영준이를 찾아온 것이다. 한 번도 자기 책상과 걸상을 가져본 적이 없는 영준이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연신 쏟아냈다. 영준이의 부모님은 낮에는 일 하러 나가느라 영준이의 책상을 볼 수 없지만 저녁이 되어 돌아오면 그 동안 아들에게 사주고 싶었던 책상과 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윤재춘 씨가 참여하는 ‘청소년 사랑의 공부방 만들기 프로젝트’이다. 그는 이곳에 올 때면 1박 2일 동안 머물면서 5가구 청소년들에게 공부방을 만들어 주는 봉사를 한다.
“처음에 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책상, 걸상이 없어 공부하기가 불편한 청소년들은 거의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연히 제주시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추자도에는 책상, 걸상도 없이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우연히 듣게 된 추자도 이야기가 그를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가슴이 따듯한 슈퍼맨으로 변신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청소년 공부방 만들기 프로젝트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참여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윤재춘 씨가 추자도에서 하는 일은 책상과 걸상을 건네고 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비록 좀 서툴지만 정성을 다해 공부방 도배를 시작으로 장판 교체며 커튼 설치까지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아이들에게 아늑한 공부방을 선물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1박 2일이 지나고 이튿날 해가 저물 무렵에서야 마지막 배편으로 제주도를 떠나올 때면 뿌듯한 마음과 아쉬움이 교차하곤 한다. ‘쉼’이 몸과 마음의 재충전을 위한 것이라면, 그에게 있어 진정한 쉼이란 섬마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일 것이다. 추자도에서의 1박 2일 동안 그의 몸과 마음이 재충전되어 다시 열심히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소외된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 혼디학교’
윤재춘 씨가 청소년들을 위한 봉사를 한 것은 청소년 공부방 만들기 프로젝트가 처음은 아니다. 사실 그는 2009년부터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들의 학업 및 진로 지원을 위해 야간학교 자원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함께한 야학의 보여주기식 운영에 실망을 느끼게 되어 2014년에 단 한 명의 청소년의 꿈이라도 진심으로 응원하기 위해 뜻을 같이 한 사람들과 함께 ‘야간학교’를 설립했다.
윤재춘 씨와 그들이 제주도에 세운 학교가 바로 ‘청소년 혼디학교’이다. 이 학교는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야간학교이다. 그런데 참 낯선 말이다. 혼디학교라니? 도대체 혼디학교는 뭘까? 윤재춘 씨에게 물었더니 ‘혼디’는 본래 제주도 방언인데, 그 뜻은 ‘함께’, ‘같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니 ‘청소년 혼디학교’는 ‘청소년 함께 학교’인 셈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교는 싫어요. 그래서 저희는 다른 곳의 후원을 받지 않아요. 후원자의 후원 의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학교가 아니라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들이 학업을 이어가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진학을 도와주는 진정한 야학을 운영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자 목표입니다.”
청소년 혼디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3교시 중·고 검정고시 대비를 위한 수업이 진행된다. 지금까지 14명의 청소년들이 이 학교를 통해 검정고시에 합격하였고 그중 일부는 대학진학까지 하였다.
“제주도에는 대략 400여명의 학업중단 청소년들이 있어요. 그들이 이 곳 혼디학교를 통해 학업을 이어가고 꿈을 키워 갔으면 좋겠어요.”
혼디학교는 어느 한 곳으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받지 않는다. 개인으로부터 매월 5.000원씩 후원받는다고 한다. 이는 행여나 혼디학교가 보여주기식 운영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장애우,
긴 사랑이 필요한 친구
윤재춘 씨에게 ‘장애우’란 단어는 신체의 일부가 불편한 사람들이란 뜻이 아니다. 그에게 장애우란, ‘길 장, 사랑 애, 벗 우’라는 뜻으로 풀이해서 “길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 우리들의 친구”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그는 장애인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가려고 애쓰고 있다.
그가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제주 애덕의 집’ 봉사를 하던 때였다. 작은 봉사라 생각했는데 정작 장애인들이 굉장히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봉사를 하러 간 자신이 오히려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제주농협 직원들과 뜻을 모아 직장 내 봉사단체인 ‘제주농협 애덕 봉사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매주 토요일이면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제주 애덕의 집’을 방문하여 장애인들과 함께 보내고 있다.
“봉사를 하면서 정말 제가 그분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무언가를 해주는 것보다 마음을 나누고, 그분들도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드리는 게 정말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대중탕 목욕봉사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대중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켜 주는 일은 육체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보다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편견의 시선이 더 힘들다.
그러나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봉사가 아니라 친구이고, 친구란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것이라 믿기에 그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
나눔과 봉사는 특별하거나 비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라고 말하는 윤재춘 씨. 그러나 추자도 청소년이나 혼디학교의 야학 청소년, 또는 목욕을 함께 하는 장애인에게는 그가 작은 영웅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