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식품영양사로 근무하는 공무원, 박명희 씨는 10년째 어르신 목욕봉사를 해오고 있다. 주중에는 공무원들의 먹거리를 위해 수고하고, 주말에는 홀몸 어르신들의 목욕을 해드리며 보내는 것이다. 바쁜 생활이지만 그녀에게는 월요병이 없다. 목욕봉사를 하며 휴일을 보내고 나면 언제나 기쁨과 행복감으로 한 주를 시작하게 된다.
목욕봉사,
힘들지만 귀한 일
박명희 씨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서 20년째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그녀는 식품영양사로서 공무원들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주중에는 공무원들의 안전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주
말에는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텐데도 돌봄이 필요한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음식봉사와 목욕봉사를 해드린다.
“문체부에서 자원봉사 동우회 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우회에 가입을 했어요. 동우회에서 어떤 봉사를 할까 이런 저런 모색을 하다가 어르신들 목욕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문체부 소속 공무원이니까 문화공연 관람을 돕는다든지 하는 문화 봉사를 고려해 보았지만, 정기적으로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지적되어 문화봉사 의견은 사그라들었다. 다른 봉사처를 찾던 중 문체부와 자매기관으로 연결되어 있던 노원구 홍파복지원의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홍파복지원에 계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가족이 없으시고, 3~4명이서 한 방을 쓰며 외롭게 사는 분들이었어요. 제가 요리를 좋아하니까 복지원에 갈 때면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해서 가져가서는 같이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다가 식사를 마친 후에 목욕을 시켜 드렸죠.”
그렇게 목욕봉사를 처음 시작했다. 남자 봉사자들은 시각장애인들을 맡아서 목욕봉사를 하였고 여자 봉사자들은 할머니들을 맡아서 목욕봉사를 하였다. 성당에 다니며 봉사와 이웃을 돕는 생활을 경험해 본 그녀였지만 목욕봉사는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목욕봉사가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젊어서 저희 아이들 키울 때처럼 목욕시키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부축해서 샤워실로 이동하는 일이며 때수건으로 때를 밀어드리고 헹구고 수건으로 닦아드리고 옷을 입혀 방으로 다시 모셔드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목욕봉사를 하면 할수록 또 한 가지 깨달아지는 게 있었단다. 목욕봉사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참 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할머니를 정성껏 다 씻겨 드렸는데, 그 할머니는 다시 등을 밀어달라며 등을 들이미셨다. 등을 또 밀어드렸더니, 이번에는 다리며 손이며 다시 때를 씻겨달라고 그러는 것이다. 가만히 관찰했더니 그 할머니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다른 할머니들도 자꾸만 다시 씻겨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상했어요. 정성껏 밀어서 헹궈 드렸는데 왜 그러시는 걸까, 하고요. 내가 하는 목욕봉사가 맘에 안 들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할머니들이 왜 그런지 알았어요. 할머니들은 정이 고프셨던 거예요. 씻겨 드리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손길을 통해 정이 오가는 게 좋으셨던 거죠.”
할머니들은 박명희 씨가 딸 같았다. 다리며 손이며 씻겨 주는 동안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누는 시간들이 할머니들에게는 힐링이요 위안이었던 셈이다. 그것을 알게 되자 박명희 씨도 그저 열심히 수고를 하는 것을 넘어 진심을 다해 씻겨 드리게 되었다. 목욕봉사가 비록 몸이 고된 일이긴 하지만 얼마나 귀한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목욕봉사에서
배우는 인생교훈
박명희 씨에게는 월요병이 없다. 누구보다 고된 휴일을 보낸 그녀이기에 월요일이면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로 피곤이 밀려올 것 같은데 그녀는 오히려 월요일에 더 생기가 넘친다. 직장에 나가 동료들에게 휴일 동안 목욕봉사를 하면서 느낀점이며 할머니들과 나눈 이야기며 나누고 싶은 이야기 보따리가 많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말한다.
“박명희 씨는 봉사활동을 다녀오면 마음이 좋은가 봐요. 저 같으면 주말에 쉬지 못하고 봉사하면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을 텐데 명희 씨는 정말 즐거워 보이더라고요. 어떤 할머니가 있었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흥이 나서 늘어놓는데,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즐거워하는 바를 나누어 주는 사람 같아요. 또 저희에게도 봉사를 같이 하자며 권하기도 하죠.”
물론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복지원에 가서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누고 목욕봉사를 하다 보면 늘 뵈던 할머니께서 안 계시는 때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제가 묻죠. ‘그 할머니 어디 가셨어요?’ 그러면 어르신들이 대답해 주세요. ‘그 할머니 갔지’ 라고요. 그리고는 더 이상 그 할머니에 대해서는 말씀들을 안 하세요. 그 때 전 알게 되죠. ‘아 돌아가셨구나.’ 하고요.”
이런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인생의 의미를 되묻게 되곤 한다. 목욕봉사를 해온 세월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박명희 씨도 조금씩 나이를 먹었다.
“오랫동안 목욕봉사를 하다 보니 이 일을 통해 제 자신이 성숙해 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어르신들을 보면서 누구나 저렇게 나이를 먹는구나 하며 겸허해지게 되고요. 목욕봉사가 저를 철들게 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박명희 씨는 100회 이상의 목욕봉사를 해오고 있다. 그 시간들은 그녀에게 인생교훈을 얻는 값진 시간이었다. 그녀는 처음에 봉사를 하면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자신이 배우고 받는 것이 많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봉사는 하면 할수록 더 감사하는 마음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