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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작은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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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고려대 후문 식당 사장 - 최필금 영웅
  • 등록일
    2017.03.24 10:09:55
  • 내용
    집밥 베풀고 감사 배운다

     
    최필금 씨는 자신이 배우지 못하고 먹지 못한 서러움을 나눔과 기부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성북구 고려대 법과대학 후문에서 하숙집과 유정식당을 운영하며 젊은이들에게 엄마의 사랑을 베풀기도 하고 또 수익금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나눔과 기부로 사랑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따뜻한 밥과 장학금으로
    나눔 실천


      “어머니, 어머니!”
      고려대학교 후문 앞 유정식당을 찾는 대학생들이 최필금 씨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 지역의 터줏대감인 그녀는 성북구에서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식당을 운영해 왔기에 이 지역 젊은이들에게 어머니로 불린다.
      고려대 학생들과 모자지간, 모녀지간처럼 지내니, 학생들은 그녀에게 또 다른 자녀들인 셈이다.
      “밥 주세요!”하고 몰려드는 학생들에게 그녀는 달리 무엇을 줄까 메뉴를 물어보지도 않고 알아서 척척 밥상을 차려 놓는다. 국이며 찌개며 손맛이 가득 든 찬들을 친자식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듯 내놓는다. 그래서 최필금 씨가 차려준 밥은 식당 밥이 아니라 영락없이 엄마표 집밥이다.
      “밥 더 먹을래? 국 더 줄까?”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최필금 씨는 뭐 부족한 게 있나 살피면서 이런저런 것을 물어본다. 학생들도 마치 집에서 엄마에게 하듯이, 밥 더 주세요, 국 더 주세요, 하며 말도 많고 웃음도 많다.
      이렇게 학생들과 가족처럼 지낸 지 어언 30년. 그 세월 동안 그녀는 유정식당과 더불어 하숙집을 함께 운영해 왔다. 그리고 식당과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2007년부터 지금까지 총 2억 4,700만 원을 고려대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고려대도 최필금 사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운초우선교육관 3층에 그녀의 이름을 딴 ‘최필금 강의실’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고려대의 많은 학생들은 유정식당의 맛과 정을 익히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유정식당에 대한 학생들의 칭찬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학생들은 최필금 씨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상패를 들고 웃고 있는 최필금 씨

      “유정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꼭 집에서 밥 먹는 기분이 들어요. 밥이 부족해도, 반찬이 부족해도 엄마처럼 아끼지 않고 더 주시고 챙겨 주시니까요. 그 맛과 정이 좋아서 자꾸만 가게 되고, 사장님도 엄마라고 부르게 되었어요. 사장님도 저희를 아들딸처럼 대해 주시고요.”
      “사장님이 언제나 엄마처럼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하세요. 맘껏 더 먹어도 전혀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평소보다 적게 먹으면 속이 안 좋으냐고 꼭 물으시죠. 또. 알아서 누릉지와 숭늉 한 사발을 가져다주시면서 천천히 들라고 하실 때도 있어요.”
     
    한복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있는 최필금 씨

      학생들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이토록 남다르다. 특히 인근 중고등학교 운동선수 중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식당에는 유독 운동부 선수들로 넘쳐난다. 운동량이 왕성한 그들이지만 이 식당에만 오면 넉넉하게 배를 채우고 마음도 푸근해지니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녀의 이런 특별한 학생 사랑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녀 자신이 학창시절, 부산에서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며 돈을 버느라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것이다. 본인이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아픔이 있다 보니,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기특해 보이고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게 최필금 씨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그녀로 하여금 하숙집과 식당을 하게 만든 셈이었다.


    학생 사랑에서
    이웃 사랑으로


      최필금 씨는 23세에 상경해 시장에서 라면을 팔고, 낚시터에서 밥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1985년 세를 얻어 하숙집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하숙집을 하던 집이 팔려 더 이상 하숙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를 맞았지만 계속해서 하숙집을 찾는 학생들을 위해 결국 빚을 내면서까지 하숙집을 계속하게 되었다.
      유정하숙집은 유정식당처럼 가족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최필금 씨가 바쁜 학생들을 위해 양말, 옷, 속옷 등을 세탁해 주거나, 한때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방 3개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을 정도였다.
      유정하숙의 가장 큰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밥이다. 최필금 씨는 하숙집에 사는 학생들을 위해 매일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정성이 가득한 맛있는 밥을 직접 짓는다.
      유정하숙이 법과대학에서 가깝다 보니, 법학도나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하숙생이 제법 많았다. 1986년부터 유정하숙에 살다가 사법고시에 합격해 현재 변호사를 하는 조영봉 씨는 그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최필금 씨가 차린 상

      “최필금 사장님은 손이 크고 인심이 좋으셨어요. 제가 한 번은 친구를 하숙집에 데리고 가서 밥을 먹는데도 눈치 하나 주지 않고 밥을 많이 퍼줬지요. 학생들을 자식같이 대해 주셨거든요. 아프냐, 밥은 먹었냐, 늘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셔서 마치 집에서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것처럼 편안하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최필금 씨의 학생 사랑은 그녀를 서운하게 대한 학생들에게도 좋은 마음을 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한 번은 하숙생 중에 몇 개월째 하숙비를 내지 못하는 학생이 있었어요. 형편이 어려운 거냐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물어봤어요. 그런데 그 학생이 미안했던 지 그 다음 날 조용히 하숙집을 나갔더라고요. 뭐, 나중에 그 학생이 잘 되면 찾아오겠죠. 지금은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 30여년간 이곳 유정하숙을 거쳐 간 젊은이들만 해도 1천여 명이 넘는다.
      젊은 시절 남편은 중동으로 일하러 나가고 그녀 혼자 남아 아이들을 키우느라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시작한 유정식당과 유정하숙이 그녀의 삶을 오히려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린 시절 못 배운 서러움도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인정을 베풀면서 달랠 수 있었고, 베풀고 나누면서 사는 삶의 기쁨도 배울 수 있었다.
      이제 그녀의 학생 사랑은 더 넓은 이웃사랑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려대학교에 발전기금을 기부한 것 말고도 언제나 이웃을 위해 자신의 물질을 나누며 봉사하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한다.
      “제가 조금만 신경을 쓰고 베풀면 누군가가 기뻐하고 행복해질 수 있잖아요. 그러니 봉사를 어떻게 안 할 수 있겠어요. 모든 건 내 가슴이 시키는 일이라 생각해요. 저만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매 달 성북구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 중 생일을 맞이한 분들을 자신의 식당으로 초청하여 이 분들에게 불고기를 대접하는 것이다. 이때도 그녀의 달란트인 요리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있는 최필금 씨

      “제가 직접 요리를 해서 대접해 드려요. 요리 솜씨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저의 이런 달란트를 이웃들을 위해 귀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죠.”
      그녀는 2005년부터 인근 종암중학교와 숭례초등학교 소년·소녀 가장 20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또 올해 추석 때도 어김없이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 뵙고 송편을 나누었다.
    유정식당과 유정하숙의 이름처럼, 그녀의 삶은 따뜻한 정이 있는 유정(有情)의 삶이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집밥을 먹이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에서 식당과 하숙을 시작한 것에서부터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일까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쌀밥 한 그릇처럼 그녀의 삶은 이웃을 향한 따뜻한 정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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