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은 건강한 사람의 특권이라는 아름다운 특권의식으로 살아가는 이가 있다.
바로 100회가 넘게 헌혈 봉사를 한 채종탁 씨.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헌혈에 동참하는 헌혈가족이다. 아내도 큰딸도 헌혈에 동참하고, 고1인 막내아들도 헌혈을 계획하고 있다.
헌혈의 집
단골 손님
헌혈을 하는 날이면 채종탁 씨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통영에서 진주까지 먼 걸음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통영에는 ‘헌혈의 집’이 없기에 채종탁 씨는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헌혈을 하고 있다.
이렇게 먼 거리를 달려가 진주 헌혈의 집에 들어서면, 그 곳 직원들도 반갑게 그를 맞이한다. 물론 헌혈의 집 사람들이야 시민들의 헌혈에 언제나 감사의 마음을 표하지만 이 곳 진주 헌혈의 집 직원들이 채종탁 씨를 맞이하는 인사는 감사의 마음을 넘어 존경의 마음까지 담고 있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100회가 넘는 헌혈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계속해 오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본부에서 근무하는 채종탁 씨가 헌혈 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2년 봄이었다. 헌혈에 동참해 달라고 권유하는 어린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이 바로 헌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 헌혈 봉사를 하기 전에도 작은 돈이나마 정기적으로 남모르게 기부를 해오고 있었는데, 돈으로 쉽게 하는 봉사가 아니라 마음과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봉사를 하고 싶다는 아쉬움이 늘 있었어요. 그러던 중 헌혈을 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시작한 헌혈이 이젠 생활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혈액이 절실히 필요한 생명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먼 거리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채종탁 씨는 말한다. 그가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피를 나누는 이유 또한 헌혈이 생명을 살리는 값진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집은
헌혈 가족
채종탁 씨의 가족들은 그의 헌혈 봉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실 채종탁 씨의 건강을 염려해서 말리기도 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누구보다 든든한 응원자이자 헌혈 친구로 동참하고 있다.
“제가 처음 헌혈을 할 때는 아내가 칭찬과 격려를 했어요. 그런데 그 횟수가 너무 빈번하다 보니 건강이 염려가 되었는지 말리더라고요. 다 헌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가족이 함께 손잡고 헌혈을 하러 가요.”
지금 채종탁 씨 가족은 채 씨뿐만 아니라, 아내와 고3인 큰딸도 헌혈에 참여하고 있다.
“아내는 철분이 부족해서 자주 하지는 못해요. 고3 딸은 2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저와 손을 잡고 헌혈의 집에 가고요. 아직 고1인 아들은 나이 때문에 할 수 없지만 조만간 저와 함께 가기로 약속했답니다.”
가족과 함께 헌혈을 한 지 벌써 4년. 그의 책상 서랍엔 가족들의 헌혈증이 100장도 넘게 가득하다. 그는 딸과 “헌혈증 100장이 넘으면 좋은 단체에 기부하자!”는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은 올 7월에 지켜졌다. 백혈병 소아암 협회에 기부한 것이다. 큰딸도 헌혈증이 백혈병을 앓는 아이들에게 쓰인다고 생각하면 정말 뿌듯하다고 말한다.
채종탁 씨는 꿈이 있다. 앞으로 헌혈 200회 명예대장을 지나 300회 최고 명예장에 이르기까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오해와 편견을 넘어서 자신의 생명인 피,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선물을 나누어 주는 그는 추위를 녹이는 산타클로스와 같은 영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