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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작은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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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평생 나눔과 기부 실천한 요양보호사 - 박석호 영웅
  • 등록일
    2017.03.23 16:30:49
  • 내용
    나눔과 기부로 즐거운 인생!

     
    박석호 씨는 중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용돈을 모아 기부와 나눔을 시작해서 50년 동안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에게 나눔과 기부는 생활이고 인생 그 자체인 듯하다. 나이 60이 넘은 지금까지도 “봉사는 내 운명”이라며 재능기부와 나눔의
    손길을 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눌수록 기쁨도 두 배 행복도 두 배가 되기 때문이다.


    인생을 바꾼
    한 장면


      50년간 용돈을 모아 소년소녀 가장 돕기, 독거노인에게 쌀과 연탄 기부 봉사, 취약계층 청소년 무료 학습 자원봉사에서 마을 앞 대청소나 경로당 봉사활동 같은 소소한 봉사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한 사람이 다 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봉사를 평생에 걸쳐 해오고 있는 박석호 씨.
      그는 이렇게 50년 동안 한결 같이 나눔과 기부를 실천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가 나눔과 기부 인생을 시작 한 것은 아주 오래 전,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생 시절의 그는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외상값을 받으러 갔다가 그 집 학생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어떤 집에 외상값을 받으러 갔는데, 제 또래로 보이는 남학생이 나와서는 저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하는 거예요. 저는 차마 돈 달라는 말을 더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빈손
    으로 돌아왔죠. 그런데 어머니는 저더러 외상값 받았냐고 묻지도 않으시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그 집 형편상 외상값을 받아 오지 못할 것을 아셨던 것 같아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그 일이 박석호 씨에게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평생토록 가슴에 각인된 한 장면이 되었다.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또래 친구 앞에서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빨갛게 홍당무가 된 얼굴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그 남학생을 잊을 수가 없었단다. 번개탄이며 라면 값을 내지 못해서 주눅 드는 모습을 보면서 먹을 것, 입을 것 없이 사는 이들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서 작아져야 하는지를 목격한 것이다. 이 한 장면이 박석호 씨가 주변의 불우이웃의 형편에 대해서 이해하고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용돈 모아 나누는
    중학생 기부천사


     
    거리 청소 중인 박석호 씨
     
      박석호 씨가 나눔과 기부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시절이었다. 그러니까 부모님의 가게 외상값을 갚지 못한 남학생을 목격한 다음이었다.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무작정 다른 사람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용돈이라고 해봤자 얼마 됩니까? 그러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열심히 모았죠. 그래서 모이면 동네에서 오가며 보았던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이나 결손 가정의 아이들을 찾아가 도왔어요. 또 글을 못 읽는 문맹 어르신들에게는 한글을 가르쳐 드리고 학교에서 배운 한자도 가르쳐 드리면서 재능기부도 했고요.”
      그가 그런 결심을 한 데에는 평소에 부모님 가게에서 배달 심부름을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는 장애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들의 삶을 직접 들여다볼 기회가 자주 있었던 영향도 컸다.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 용돈을 모은 돈으로 쌀이나 연탄을 지원해 드리고 어르신들 공부도 봐 드리면서 박석호 씨는 자기가 큰 선물을 받았단다. 바로 ‘행복’이라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선물 말이다. 그 선물을 한번 받아보니 기쁨과 감사가 너무 커서 그는 한번 시작한 나눔과 기부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머니께 들켰어요. 용돈을 모아서 하나도 쓰지 않고 어딘가 다른 데 쓰고 있다는 걸 눈치 채신 거예요. 야단을 맞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부모님께서는 저의 나눔과 기부에 동참해 주셨어요. 그다음부터는 혼자가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했죠. 행복이라는 선물을 부모님도 받으셨을 거라 믿습니다.”
      중학생 때 시작한 나눔과 기부가 첫 신호탄이 되어 그 이후로 50년 동안 나눔과 기부가 이어졌다. 광주광역시 강남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그의 나눔은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계속되고 있다.


    청소년들을 위한
    봉사


      박석호 씨가 특히 오래도록 마음에 두어 온 봉사는 바로 청소년들을 위한 봉사였다. 우선 박석호 씨는 그의 나이 20대에 이미 ‘구리 애향 청년회’ 봉사단체를 조직했다. 혼자서 봉사하기보다는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함께 봉사하였다.
    경로당 위문공연을 비롯하여 한글 한자 지식기부, 사회복지시설 환경미화 봉사,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배식 봉사, 연탄배달 봉사,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학습지도 등을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한 것이다. 그 후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이런저런 봉사를 하다 보니 청소년을 위한 봉사단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도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이나 단체는 좀 되는데, 청소년 관련 봉사단체나 시설이 많이 부족하다니,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청소년을 위한 봉사의 일환으로 ‘자전거 타기 클럽’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자전거 타기 클럽은 자전거를 타며 환경운동을 하는 클럽이었다. 클럽에 가입한 청소년 회원에게는 자전거를 선물로 주었다. 주말이면 함께 자전거를 타며 환경봉사를 하였다.
      또한 청소년 운동의 필요를 느껴 ‘줄넘기 대회’와 ‘훌라후프 대회’를 개최하였다. 어떤 기관을 통해서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인근 학교와 유관 기관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 학교 체육관을 빌려 청소년들의 건강을 위한 문화 체육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처럼 박석호 씨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누군가가 해 주기를 바라는 봉사가 아니라 봉사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 수고를 던져서 봉사하는 프론티어 봉사자였다. 이렇게 그가 평생에 걸쳐 변함없이 나눔과 기부에 대해 열정을 지닐 수 있는 것은 바로 나눔이 주는 선물,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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