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근 씨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양로원, 고아원을 다니며 봉사를 하였다. 그리고 이 봉사는 자연스레 대학교 봉사동아리로 이어졌고, 임관을 위한 훈련생 시절과 지금의 사격부대 부대장 시절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마 그의 봉사의 손길은 삶이 다하는 날까지 이어질 듯하다.
봉사의 시작은
볶음밥 대신 짜장면으로
“사장님, 짜장면 한 그릇 주세요.”
오늘도 김장근 씨의 점심식사는 짜장면이다. 볶음밥도 있고 같은 짜장면 중에서도 삼선짜장이나 곱빼기도 있는데 그는 늘 짜장면을 주문한다. 이젠 식당 주인도 으레 그렇게 알고 짜장면을 내 올 정도가 되었다. 그는 왜 그렇게 짜장면 매니아를 자처하는 것일까?
“짜장면이 볶음밥보다 2천원 저렴하잖아요. 먹고 싶은 볶음밥을 한번 참으면 2천원을 모을 수 있죠. 때론 소주 한 잔이 생각나도 밖에서 마시지 않고 집에 와서 밑반찬에다가 한 잔 마시고 말죠. 그렇게 모아진 돈은 고스란히 저의 돼지저금통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미사일 사령부’ 사격대장이다. 그렇게까지 천원, 이천원을 아끼면서 살아야 할 정도로 살림이 궁핍하지 않다. 그런 그가 알뜰한 주부처럼 절약을 실천하며 돈을 모으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데 쓰기 위해서이다.
“먹고 싶은 식사 대신 조금 저렴한 식사를 하면 오히려 마음이 뿌듯해요. 좋은 일을 위해서 내가 노력하고 있구나 싶어서 기분도 좋아지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조금씩 돈이 모이고 있구나 싶어서 마음이 배가 부르죠.”
밥값, 용돈을 아껴서 모은 돈은 고스란히 연말이면 고아원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 학용품도 사고 간식도 사 간다. 김장근 씨가 고아원을 찾아가면 아이들도 반갑게 맞이하며 그를 안아준다. 그는 아이들 한 명, 한 명 안아주며 그들과 눈을 맞춘다.
2011년에는 꾸준히 모은 100만 원을 가지고 양평에 거주하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연탄 2,100장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찬바람이 유난히 많은 양평의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은 추운 겨울을 연탄에 의존하며 보내야 하는데, 아마 그가 나눈 연탄으로 인해 그해 겨울은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부모에게 배운
나눔과 봉사
김장근 씨의 봉사는 학창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고아원, 양로원에 봉사를 다닌 것이다.
“특히 어머니께서 어려운 분들을 열심히 도우셨어요. 그런 어머니를 따라 다니다 보니 봉사는 당연한 일이 되었죠. 다 부모의 본을 받은 것뿐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봉사는 자연스레 대학교 시절까지 이어졌다. 노인복지와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봉사동아리를 통해서 무의탁 노인들을 섬긴 것이다. 무의탁 노인 4분의 가정을 매월 2~3회 방문하여 집안 청소와 꾸준히 모은 용돈을 가지고 벽지와 장판도 바꿔드렸으며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을 위해 병원진료 봉사를 꾸준히 해왔다.
“자녀들을 키우시고 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어르신들께서 편안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셔야 하는데 홀로 외롭게 지내시는 것이 마음 아파요. 그래서 잠시나마 제가 그 분들의 손주가 되어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행복함을 느껴 지속적으로 봉사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의 봉사는 2003년 ROTC로 임관하면서도 계속되었다. 군인 신분이기에 제한된 영내 생활을 하면서도 매월 쌀 40~50㎏을 충북 음성읍에 거주하는 무의탁 노인분에 보내 드리고(현재까지 10㎏ 쌀, 약 720포대), 매월 일정 후원금을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후원하여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있다.
“군인의 책무를 다하면서도 할 수 있는 봉사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군인 신분으로는 제한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다 중학교 때 엄마를 따라 다녔던 양로원 생각이 났어요. 노인 분들에게는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그 나이에 느꼈거든요. 그래서 쌀을 보내드리자고 결심했지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보고 배운 봉사가 평생에 걸친 그의 삶이 된 것이다. 힘들지 않냐고 주변에서 묻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아이들과 노인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행복을 얻어간다고 말한다.
남을 도울수록 자기가 부자가 된 것 같다는 것이다. 남다른 행복감을 느낄 수 있으니 오히려 자기가 행운아란다.
국가에 대한 충성은
부하사랑으로부터
김장근 씨는 정말 군인다운 군인이다. 왜냐하면 부하들을 친동생처럼 여기며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부하 병사들을 위한 나눔을 실천한다. 그는 먼저 불우한 병사의 가정을 일일이 파악한다.
부모님이 다 계신지, 아픈 부모님은 계시지 않은지 등 병사들 가정의 어려움들을 꼼꼼히 살핀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운 병사의 가정에 쌀과 생필품을 지원해 주고 있다.
또는 병든 조모를 모시는 병사가 군 생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병원 진료를 지원하고 건강식품을 보내 드리는 등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병사에게 관심과 마음을 쏟는다. 같은 부대에서 복무하는 한 병사는 이렇게 말한다.
“김장근 소령님은 큰 형님처럼 저희들을 아끼고 챙겨 주십니다. 어디가 아픈 지, 군생활 하면서 어려움은 없는지 항상 관심을 보여 주시죠. 사실 지휘관에게 사병들이 개인적인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소령님은 큰 형님처럼 저희들을 진심으로 대해 주시는 게 마음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저희도 마음을 열고 형님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김장근 씨는 참 마음이 큰 군인이다. 그는 매월 봉급에서 10%는 아예 떼어 놓는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군인에게 월급의 10%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닐 텐데 말이다. 아깝지 않냐고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는 고개를 젓곤 한다.
“저의 봉급은 국민의 세금에서 나옵니다. 국민들로부터 받는 봉급인 셈이니 그 것을 국민을 위해 다시 쓴다는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죠. 군사력이 물리적 화기만이 아닌 정신력에서 나오듯이, 봉사도 돈만을 가지고 한다기보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죠.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투철한 군인정신은 그대로 봉사정신이 되었다.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듯 외부의 여건을 탓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며 열심히 이웃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10만 원으로 시작한 기부지만 월급이 점점 많아져도 그의 10% 봉사는 계속되어 왔다. 앞으로도 봉급 10%를 떼어 봉사와 기부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봉사와 나눔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남다른 행복을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