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꿈꾼다
신한울 원전 1·2호기 건설로 덕천리 주민 이주
울진군 덕천리에 신한울원자력발전소 1·2호기 건설계획에 따라, 2008년 덕천리 주민 이주대책이 논의되었다. 논의 과정에서 주민들 사이에 이주반대 여론이 형성되었고, 새로 조성되는 이주대상지 원주민과의 갈등도 불거졌다. 울진군은 주민 이해를 돕기 위해 이주대상 주민에게는 다른 원자력발전소 이주현장 견학, 주민생계대책 지원, 공동시설 등 이주단지 건설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이주대상 주민과 원주민의 협의체도 구성하여, 서로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 이주를 완료할 수 있었다.
새로운
고향
양 모 씨는 새로운 고향을 얻었다. 60 평생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던 고향 마을에서 이제 더는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향을 잃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 고향이 생겼다는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정겨운 이웃들이 모두 함께 옮겨왔기에 외롭지는 않다. 그래서 때로는 고향 마을을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 심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에 살던 곳보다 쾌적한 마을과 집에서 새 고향을 만끽하려 한다.
물론 가끔은 아쉽고 허전하다. 그럴 때면 마을 전시실에 있는 옛고향의 축소 모형을 바라보며 향수를 어루만진다. 마을회관에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옛 고향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조상 대대로 살던 집과 땅을 내놓으라니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 시위도 많이 참여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는 겪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사업 추진 관계자들은 성의 있는 태도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신중하고 사려 깊게 협의에 임했다. 주민이 주도해서 서로 뜻을 모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주할 마을도 정성을 다해 꾸며 나갔다. 그래서 양 씨와 동네 주민은 하나둘 마음의 문을 열었다.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동네를 직접 방문해서 보면서 어떤 선택이 더 바람직한지 고민도 했다. 그 선택의 결과 지금 새로운 고향에서 또 다른 희망을 키우게 되었다.
경북 울진 원자력 발전소
양 씨의 고향은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천리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 신한울원자력 발전소 1·2호기 건설이 계획됨에 따라 동네 주민 모두가 마을을 떠나야 했다. 원자력 발전소 신규 건설과 이주 사실을 알았을 때 양 씨와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암담한 심정이었다.
이미 인근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 때문에 20여 년 불편을 감수하고 희생하며 살아온 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발전소를 짓겠다고 동네를 비우라고 하니 반발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울진군과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현실적 불가피함에 공감하고 대립각을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양 씨 집을 비롯한 마을 주민 60세대는 죽변면 후정리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로 이주해서 새로운 생활 터전을 꾸리게 되었다.
기피 시설 1호,
원자력 발전소
2002년 5월 4일 산업자원부는 울진군 북면 덕천리 일대에 원전 건설 예정지 지정 고시를 함으로써 신울진 원전 1·2호기 건설 계획을 밝혔다. 예정 지역 내 주민은 극렬히 반대했다. 주민의 반대와 저항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미 덕천리 바로 옆 동네인 부구리에 1988년부터 세워진 한울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원자로가 6기나 가동 중이다. 이 때문에 크고 작은 불편과 희생을 감당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한술 더 떠서, 신규 원전 부지 필요성을 내세워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피해 의식이 생겼다. 마을 주민은 한목소리로 신규 원전 부지 지정 추진 철회를 외쳤다.
주민들은 덕천리 생존권 대책 위원회를 결성해서 “울진 핵 단지화 음모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수차례 걸쳐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장기간 천막 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덕천리 주민은 주민 동의 없이 진행된 지정 고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들은 주민 의견과 생존권을 무시한 무리한 처사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전기를 마음껏 쓰며 편리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사람일지라도 원자력 발전소는 반기지 않는다. 대형 폭탄을 안고 사는 듯한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도 있다. 사고가 나면 그 피해가 엄청나다는 걱정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핵’이나 ‘방사능’이라는 말은 현대 사회에서 공포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발전소 운전 중 배출되는 여러 방사능 폐기물 처리, 수명이 다한 원전의 철거 문제, 고열이 발생해 주변 생태계가 받는 영향 등의 문제도 우려의 대상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마을 근처에 세워진다거나 심지어 원자력 발전소 건설로 고향을 잃게 된다는 소식을 접할 때는 강력한 저항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매년 5퍼센트 이상씩 늘어나는 전력 소모량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소 추가 건설이 불가피하다. 비용과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원자력 발전 이상의 대안을 찾기는 힘들다.
이미 대한민국은 30% 이상의 전기를 원자력발전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발전량 기준으로 세계 5위 수준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세계 2위 원자력발전회사이기도 하다.
신한울 원전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주민들
안전과 환경 문제는 원자력 발전에서 만전을 가해야 할 필수적이고 중대한 요소이다. 안전 없는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있을 수도 없다. 하지만 안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만을 내세워 무조건 원전을 반대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우리 동네는 절대 안 된다”고 항변할 수도 없다. 어떤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어 운영되어야만 다른 지역에서 전기를 누리며 살 수 있다.
덕천리 주민 이주 대책
수립과 시행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관련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민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노력이 끊임없이 전개되어야 한다. 덕천리에서 주민 이주 대책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상실감을 안고 반발하는 주민의 심정을 이해하고 이를 다독이며 소통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했다.
주민과 소통하는 가운데 성실한 이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의견을 모으고 받아들이는 창구가 중요했다. 그래서 사업 착수 단계부터 주민이 주도하는 협의체를 구성하도록 유도했다. 이주대책위원회가 그것이다. 이런 협의체를 통로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행정이 아니라 주민 동의와 참여가 바탕이 되는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주대책위원회에서 주민 합의가 이루어지고 다시 4자(이주대책위원장, 군수, 군 의회 의장, 한국수력원자력 한울본부장)가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이후의 건설 사업을 지역 사회와 공조 속에서 효과적으로 이어가게 되었다.
지역 주민의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도 동반되었다. 선진 시설을 견학하는 것이 중요한 방안이었다. 기장군, 울주군, 경주시 등을 둘러보며 지원금 산정 방식 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주 단지 태양열 주택 건축과 관련해서 춘천 HP 공장과 신북면 마을회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긴밀한 협의를 통해 주민 요구사항을 수렴하고 조정함으로써 갈등을 최소화했다. 주민 협의 결과 한국수력원자력은 주민 생계대책 지원금을 35억 원으로 정했다. 울진군은 이주민 자녀 대학생 장학금으로 연 200만 원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고향이 사라지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치유할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주 단지 안에 덕천리 마을을 축소하여 복원하고 마을 주민이 함께 모이는 노인정, 청년회관 등 공동시설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8년 5월 15일 이주대책위원장, 군수, 군 의회 의장, 한국수력원자력 한울본부장 4자가 함께 덕천리 이주 대책협약을 체결했다. 이 자리에서 집단 이주 단지 조성 예정지와 이주세대를 확정했다. 울진군은 이주 세대마다 330㎡의 택지와 82.5㎡의 주택을 건축하여 제공하기로 했다. 그 외 주민 생계 대책과 여러지원 계획들도 확정되었다.
이주 대상지 원주민과의
갈등
덕천리 주민의 이주 대책이 정해지고 이주 대상 지역에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자 또 다른 갈등이 불거졌다. 이주 대상 지역인 죽변면 후정리 원주민들이 반발한 것이다.
신울진 1,2호기 집단이주단지 조성공사 착공식
이 마을 사람들은 새로 조성되는 이주 단지가 기존 마을보다 높게 위치를 잡고 있어 마을을 내려다보는 형국이라며 반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이주 예정지인 옥난골이 지역 민속 신앙인 성황당과 연관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라면서 반대의 뜻을 밝혔다.
요컨대 이주 단지와 기존 마을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새로운 이주민이 원주민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반대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후정리 주민들은 공사가 진행 중인 옥난골 입구에서 “주민 의견 무시한 일방적인 이주 반대, 대대손손 물려받은 옥난골 우리가 사수한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자신의 마을에 새로운 이주민을 맞이해서 함께 살게 된 원주민 처지에서는 이런 걱정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대화와 소통을 통해 원주민을 달래고 걱정하는 부분을 해결하는 일이 절실해졌다.
자칫하면 갈등이 길어져서 어렵게 방향을 잡은 이주 대책이 지연될 수도 있다. 그리고 민-관-산의 갈등 양상이 민-민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울진군은 적극적인 주민 의견 수렴과 협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기로 했다.
원주민 대표, 군 의회 의원, 지역 관계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주민 의견을 파악하고 그것을 적극 수용했다. 그 결과 동 회관 건립, 하천정비 등 원주민 요구를 수렴하여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뒷받침했다.
원주민들은 마음을 활짝 열었다. 신울진 원자력 발전소 건설로 북면 덕천리에서 죽변면 후정리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이주민들을 환영하는 잔치를 연 것이다. 원주민들은 이주민들의 고향을 잃은 애환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간의 갈등을 털어내고 앞으로 주민 간 화합을 다짐하기도 했다.
2011년 11월, 북면 덕천리 주민의 죽변면 후정리 이주가 이루어졌다. 그간의 상처와 갈등을 뒤로 하고 환영과 축복, 희망 속에 새로운 생활 터전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님비 현상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새로 건설될 원자력 발전소에 고향 땅을 양보하고 새로운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사람이나 그들을 자신의 마을로 맞이해야 하는 사람 모두 편한 마음은 아니다. 불만이 생기고 상처와 희생도 따른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을 받아들였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이웃과 삶의 터전을 얻고 지역 발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님비 현상을 극복함으로써 발상의 전환을 이루고 생활 편의와 지역 발전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주민 의견 수렴과 소통을 통해 갈등 해결을 위해 애쓴 노력이 돋보였다. 특히, 주민 주도로 협의체를 조직하도록 요청하여 이 속에서 주민 간 합의를 이룬 후 이를 공식적인 협약의 틀로 가져온 구조는 효과적이었다. 이 협의체는 주민 이주 이후에도 계속되어 협약 사항 이행을 점검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주민 의견수렴 기구로도 활용될 수 있다. 원활한 소통을 통해 이주민과 원주민 간의 갈등 소지를 차단한 것 역시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