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그리는 스무 살
천장벽화 봉사자 김민선 학생
△생활 속 작은영웅 김민선 학생 ⓒ국민대통합위원회
세명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김민선 양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실천해 온 여러가지 봉사활동을
비롯해 고등학생 시절에 미술동아리 학생들과 그린 벽화 활동으로 ‘작은영웅 10인’에 추천받았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와 함께 호스피스 병동에 봉사활동을 다녔던 김민선 양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미술재능을 발휘하여 불우학생을 위한 미술치료, 벽화 그리기 등 재능기부에 힘썼습니다. 3년 전부터는
300장의 만화캐릭터를 그려 천장에 붙이는 아이디어로 척추손상으로 누워있는 중증장애인들을 기쁘게
하기도 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아름다운 하늘을 선사한 그녀를 우리는 기꺼이 ‘작은영웅’으로 불러봅니다.
미술을 전공하는 평범한 여대생. 하지만 가까이서 함께 이야기 해보면 왜 주변에서 김민선 양을
‘날개 없는 천사’로 부르는 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이번만 해도 ‘작은영웅 10인’에 선정되어 받은 상품을
모교인 경기여고 미술동아리에 기부했고, 대학 내 영어성적 우수자로 받은 장학금도 ‘소망의 집’에 내놓았습니다.
한창 사고 싶은 게 많을 나이에 조금 더 가지기보다 하나라도 나누려고 하는 마음이 천사의 모습과 닮았다고 할까요.
“제가 받은 게 많으니까 얼마 안 되지만 보탬이 되고 싶어서”라는 말을 들으니 날개까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김민선 양은 영어성적 우수자로 받은 장학금을 겨울철 난방이 어려운 ‘소망의 집’에 건넸다.
엄마 따라 시작한 일곱 살의 봉사
김민선 양이 누군가를 돕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입니다.
엄마를 따라 노인병동을 따라나섰다가 “봉사한다는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뭘 어떻게 할지 몰랐어요. 그러면 엄마는 ‘외할머니한테 하듯 하면 돼’라고 하셨어요.
할머님들은 치매 때문에 저희를 기억도 못하셨지만,
너무 정이 들어서 나중에는 저랑 동생이 먼저 가자고 했어요.”
△벽화 봉사를 하던 경기여고 시절의 미술동아리방.
민선 양은 이때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가족이 함께 다니는 봉사활동은 민선 양에게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말 그대로 ‘늘 해오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벽화를 그려 만든 ‘공공의 행복’
평소 그림을 취미로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민선 양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재능기부로 봉사에 참여합니다. 전시회에 냈던 그림을 기증하거나
고아원 불우아동들의 미술치료를 맡기도 했습니다. 아직 어리고, 훈련받은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형제나 친구처럼 다가가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나눠줬습니다.
△미술과 봉사, 민선 양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가르쳐준 박경구 미술선생님과 함께.
“그림에는 그리는 사람의 심리나 감정이 나타나요.
그래서 어두운 색만 쓰거나 낙서만 하는 아이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져요.
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보고 밝은 색깔을 쓰도록 하는 편이에요.”
경기여고에 진학해 미술반을 지도하는 박경구 선생님을 만나면서는 오래된 건물과 벽을
새로 그리는 벽화 봉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벽화를 그릴 곳을 알아 오면 페인트를 협찬 받아
동아리 아이들 전부가 나서 그림을 그립니다. 페인트가 벗겨진, 칙칙하고 밋밋한 벽과 씨름하며 벽화를
그리면 지나다니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거리가 완성됩니다. 청담역 상아아파트 담장과
장위동 밤골아이 공부방, 봉은초등학교 담장 등 10군데가 넘는 낡은 건물벽이 민선 양과 친구들의 그림으로 달라졌습니다.
△‘소망의 집’ 천장에 그린 캐릭터 벽화(좌)
2013년 8월, 장위동 밤골아이공부방 담장벽화을 그리는 모습(우)
“껌딱지나 곰팡이를 떼어내고 페인트 냄새를 맡아야 하는 고된 작업이지만,
다 같이 모여서 완성한 그림을 보면 너무 뿌듯해요.
각자의 그림이 모여 만든 합작품이라 더 특별한 것 같아요.”
천장에 그려 붙인 행복
미술동아리 친구들은 박경구 선생님이 돕고 있던 ‘소망의 집’ 봉사도 함께 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방 안에서 하루 종일 누워 지내는 장애인 30여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만나면서 민선 양은 생활수발 외에 또 다른 무언가를 해줄 수 없을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생활 속 작은영웅 김민선 학생 ⓒ국민대통합위원회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하루 종일 보고 있으면 얼마나 외로울까 생각했어요.
마침 저희가 벽화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천장에 벽화를 그려주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렇다고 거꾸로 매달려 천장에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종이에 그림을 그려 천장에 붙여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뽀로로나 미키마우스처럼
밝고 사랑스러운 만화캐릭터를 그려 붙이기로 했습니다. 3년간 총 300여점의 그림이 천장에 올랐습니다.
불을 껐을 때도 보이도록 야광스티커까지 붙여줬습니다. 오래된 그림은 떼어내고 새로 다시 그려 붙이기를 여러 번,
‘소망의 집’은 하늘만큼 아름다운 천장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면 훨씬 예쁜 것이 많은데, 아이들이 좋아할까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붙이는 모습을 누워서 보던 아이가 너무나 환하게 웃는 거예요.
저희가 오히려 고맙더라고요.”
△바이올린을 비롯해 음악에도 관심이 많은 민선 양은 미술과 음악을 접목한 예술치료를 공부하고 싶어 한다.
주는 게, 돕는 게, 그냥 좋다
시간과 노력, 가진 것을 나누면서도 오히려 받은 것이 더 많다고 하는 자원봉사자들.
민선 양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꾸준히 여러 가지 봉사를 하면서 기뻤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 감사하고, 그 사람들이 웃을 때가 가장 좋다”고 대답합니다.
오히려 봉사로 다른 것을 얻는 것이 더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대학입학 당시에도 자기소개서에
봉사한 내용을 쓰는 것이 오히려 힘들었다고 합니다.
“자기소개서는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걸 생각하면서 봉사한 일들을 써야 했어요.
저는 그냥 좋아서 한 건데 그걸 이렇게 알리는 게 속상하더라고요.
제가 느낀 행복이나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너무 많은데 소개서에는 그게 나오지 않으니까요.”
△생활 속 작은영웅 김민선 학생 ⓒ국민대통합위원회
봉사도 입시를 위한 과정이 된 요즘, 김민선 양의 순수한 도움은 더욱 귀한 가치입니다.
스펙을 쌓기 위해 봉사했다면 알수 없었을 기쁨을 민선 양은 자연스럽게 체득해왔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순수하게 도와온 경험은 이제 꿈의 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는 복지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철이 들어 생각해보니까 돈도 많아야 되고,
땅도 사야 되더라고요(웃음). 앞으로는 미술과 음악을 접목시킨 예술치료로 사람들을 돕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 하는 전공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생활 속 작은영웅 김민선 학생(우)과 엄마 이소현 씨(좌) ⓒ국민대통합위원회
영웅의 날개 만점짜리 엄마
김민선 양의 가족은 오래 전부터 함께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물론 민선 양의 다섯 살 아래 여동생까지, 가족이 함께하는 봉사는
이제 집안행사의 일부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집안 분위기의 중심에는 어머니 이소현 씨가 있습니다.
결혼 전 인연을 맺은 밤골마을 공부방과 모현 호스피스 병동을
지금까지도 다니며 도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가끔은 민선 양조차 “엄마가 체력적으로 힘들어 보여 쉬었으면 할 때가 있다”고 할 만큼 열정적인 봉사활동.
무슨 이유라도 있는 지 민선 양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힘든 사람을 돌봐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세요.
뭘 사와도 절반은 나눠주고 우리는 남는 게 없어요(웃음). 그런데 하다보니까, 그냥 그게 더 좋더라구요.”
‘베풀면서 사는 게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몸소 보여주는 엄마.
이 분이야말로 작은영웅 김민선 양을 키운 만점짜리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