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에 대한 살뜰한 사랑
20년간 생활사 자료를 모은 이난희 씨
△생활 속 작은영웅 이난희씨 ⓒ국민대통합위원회
20년 넘게 한국 민속사 자료를 틈틈이 모아온 이난희 씨는 우리 조상들의 삶이 담긴 유물을 모아 보존한 공로로
‘생활 속 작은영웅 10인’에 추천받았습니다. 우리문화에 대한 사랑을 꾸준한 역사공부와 문화재 수집에 쏟은 것 뿐
아니라, 이를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남기기 위해 2016년 개관 예정인 서울시 ‘시민의 박물관’에 1천여 점의 자료를
기부했습니다. 우리 조상의 아름다운 삶을 유물을 통해 보존해온 그녀의 큰 노력을 ‘작은영웅’의 이름으로 기록해봅니다.
인터뷰를 위해 이난희 씨가 살고 있는 경주 양동마을을 찾았습니다. 신경주역에서 양동마을까지는 차로 40분 거리.
하지만 경주일대에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우리 문화재가 너무도 많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이난희 씨의 안내를 받아 석굴암부터 장항사지 석탑, 무열왕릉을 따라 다녔습니다. 어디를 가든 제 집 마당을 소개하듯 막힘없는 설명에 감탄이 나옵니다. 경주 곳곳에 있는 신라의 보물들을 소개하는 목소리에는 자부심 또한 가득합니다.
우리 문화를 따라 온 삶의 궤도
이난희 씨의 문화재 사랑은 한참을 거슬러갑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어요. 20대에는 사진기 하나 둘러메고
전국을 여행하며 찍은 문화재를 책으로 내려는 꿈도 꿨었지요.”
△생활 속 작은영웅 이난희씨 ⓒ국민대통합위원회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결혼 후에도 우리 문화에 대한 공부와 유물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여년 전, 우연히 들어간 골동품 가게에서 겪은 하나의 사건으로
그녀는 ‘우리가 잘 몰라서 훼손되고 있는 유물을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가게 주인이 고문서를 찢어서 가구에 붙이고 있었어요.
옛날 장롱처럼 보이게 하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니까 그랬던 거예요.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훼손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니, 너무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남은 책을 다 사버렸어요.”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고서적들 (좌)
문화재를 공부할 때 기록했던 공책 (우)
우리 것의 가치와 소중함을 모르는 세태가 발단이 되어 더 본격적으로 문화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과는 놀이동산 대신 박물관과 고궁을 돌았고 인사동과 장안평, 신설동 풍물시장과 동대문
벼룩시장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물을 모았습니다. 옛 물건이 버려져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전국 어디라도
달려가 구해야 안심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은 물건 대부분은 일반 백성들이 생활에서 썼던 물건입니다. 이난희 씨는 그 이유를 “나라의 주인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왕이 썼던 물건은 한 시대의 특수성만을 보여주지만, 백성이 썼던 물건은 그 시대의 보편적인 삶이 담겨 있다는 생각에서 그녀는 생활사 자료를 유독 귀히 여겼습니다.
“이 물건들을 보세요. 태어날 아기를 위해 지은 배냇저고리, 부부금실이 좋으라고 혼례 때 꼭 넣어가는
원앙목각인데요. 유물들을 보고 있으면 당시 사람들의 여러 가지 마음이 다 보이지요?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 인데도 지금 우리네 마음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참 신기해요.”
△생활 속 작은영웅 이난희씨 ⓒ국민대통합위원회
살림만 깍쟁이, 유물만큼은 가격흥정 않는다
이난희 씨가 지금까지 모은 생활사 자료는 3만 여점. 평범한 주부가 이만큼 방대한 양의 유물을
어떻게 혼자 모을 수 있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재산이 넉넉하거나 남다른 수완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궁금증에 이난희 씨는 ‘알뜰하게 악착같이 모으는 방법’을 썼다고 대답했습니다.
△족두리와 남자집안 내력을 적어 넣는 사성보 보자기 (좌)
청·홍색 남녀 베개와 다산을 기원하는 구봉침 (우)
본인을 위해서는 화장품 하나 사본 적이 없고, 식비를 아끼다 위와 장이 꼬인적도 있었습니다.
‘유물 살 생각에 다른 데는 지갑을 열지 않았’을 정도로 지출의 우선순위를 유물 구입에 두었습니다.
반대로 유물을 구할 때는 절대로 가격 흥정을 하지 않았답니다. 돈을 줘야 구할 수 있는 골동품일지언정,
인연으로 만나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흥정은 생각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유물에 가격을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고 팔 물건이 아닌데 가격 가지고 실랑이 하는 게 예의가 아니니까요.
그러다보니 유물을 가진 분들도 저를 우선해서 찾아주시더군요.”
이난희 씨가 유물을 구할 때 지키는 원칙이 몇 개 더 있습니다.
아시아 다른 지역에서 온 것이 아닌 우리 것인지 확인된 것, 반드시 허가받은 정식 경로를 통해서
거래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옛 물건을 모으되 철저히 원칙과 예절을 지키는 것.
그것이 이난희 씨가 유물을 대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사랑하면 윤이 난다
그날 저녁, 이난희 씨가 유물을 모아둔 창고의 문이 열렸습니다. 수많은 유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물건들은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여인의 손이 닿은 그릇과 규방공예품은 거실에,
장롱과 그 안을 채운 옷가지들은 안방에, 창고에는 농기계와 유기, 상여에 올렸던 나무걸이가 빼곡합니다.
하지만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건은 누군가 살면서 관리하고 있는 듯 깨끗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라고 합니다.
△천이 손상될까봐 여러 번 손빨래로 하얗게 만든 유물
광목천에 놓은 자수의 색이 곱다.
“저한테 올 때는 쓰레기라고 할 정도로 만신창이였어요. 어떤 건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져 버려져 있었고요.
몇 번씩 빨고, 수없이 닦으니 이렇게 빛이 나더라고요.
그래도 나한테 온 물건이니 이렇게 해주는 게 당연하지요.”
이난희 씨는 유물을 설명하면서 유난히 ‘사랑하니까’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사랑하면 낡은 물건에도 윤기가 돌고, 더러운 물건도 하얗게 된다”는 것입니다.
빛이 나는 그릇에서, 눈이 부시게 하얀 광목치마에서 그녀의 진한 사랑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유물 통해 전하고 싶은 건, 마음
이난희 씨의 이런 각별한 애정을 아는 사람들은 ‘개인박물관을 열라’고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난희 씨는 2016년 말 개관할 예정인 서울시 ‘시민의 박물관’에 수집품 1천여 점을 흔쾌히 기증하기로 합니다.
서울시 최초의 ‘생활사 전문박물관’에 둔다면, 생활 유물을 알리는데 좋을 것이라 봤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가마에 넣어두었던 가마요강 (좌)
망자의 시신을 싸는 버선, 손싸개와 오낭주머니 (우)
“이렇게 아끼는 걸 보내면 서운하지 않겠냐고 하시는데, 전혀요. 물려주고 보여주려고 모은 건데요.
저를 수십 년간 감동시킨 우리 문화가 부디 여러 사람에게 잘 전달되기만을 바랍니다.”
버려지고 잊힐 뻔한 백성들의 삶이 담긴 생활 유물. 그러나 이를 소중히 여긴 한 사람으로 인해
이제 그 의미가 많은 이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깊은 애정과 오랜 노력이 만들어낸
우리네 삶의 긴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 지, 2016년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생활 속 작은영웅 이난희씨 ⓒ국민대통합위원회
“나이와 상관없이 아직도 소녀 감성 그대로에요. 누구를 만나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유쾌한 사람이지요.”
이난희 씨를 ‘작은영웅’에 추천한 유영광 전남도청 사무관은 그녀를 ‘멋과 흥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동시에 유난한 ‘문화애호가’라고 덧붙였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다니다보니까 알 수 있었어요. 문화재를 대하는 자세가 달랐거든요.
자부심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고, 책임감은 그보다 더하고.”
그렇지 않았다면 보통사람으로는 하기 힘든 방대한 유물 수집이 불가능했을까.
그는 옛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요즘 시대에 이난희 씨의 모습이 귀감이 될 것 같았다고 추천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관심으로 알게 되어 ‘문화감성이 통하는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는 두 사람.
관심이 통하고 마음이 잘 맞는 몇몇 지인들과 꾸준히 우리의 것을 찾아 찾아다니는 행복한 여행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