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살린 기적의 두드림
화재현장에서 이웃을 구한 박세영 군
△생활 속 작은영웅 박세영군 ⓒ국민대통합위원회
박세영 군은 2014년 6월 7일에 발생한 아파트 화재에서 이웃주민들을 깨워 대피시킨 선행으로
‘작은영웅 10인’에 추천받았습니다. 당시 화재가 난 아파트는 화재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았고,
연휴 새벽이라 주민들은 깊은 잠에 빠져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박세영 군은
화재 현장을 혼자 빠져나가는 대신 아버지와 함께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고,
주민들의 탈출을 도왔습니다. 위기상황에서 적극적인 초동대처로 인명피해를 막은 박세영 군은
이기적인 세태를 돌아보게 하는 우리 시대의 ‘작은영웅’입니다.
“으이구, 말 좀 잘해봐!”
“아, 저 말 잘 못 해요.”
부끄럽다고 입을 다문 박세영 군에게 담임선생님의 구박이 쏟아집니다. 몇 번을 물어봐도
“이게 칭찬 받을 일인가요?”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며 멋쩍은 웃음만 지어보입니다.
정작 ‘작은영웅’이 자신의 공적을 무덤덤해하니, 이를 대견하고 기특해하는 어른들이 도리어 부끄러워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난다면
‘화재가 난 고층아파트에서 이웃집 사람을 깨워 함께 빠져나온 일’
세영 군이 한 일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영 군 말대로 이것이 정말 별 일 아닐까요?
눈앞에서 불길이 뻗치고 유독가스가 퍼지는 고층 아파트에서 이웃사람을 깨워 같이 내려올 수 있을까를
나 자신에게 반문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화재현장에서 나 먼저 살겠다고 서두르다 더 많은 인명이 참변을
당한 사례도 흔하니까요.
△화재 발화점으로 전소된 12층.
큰 화재에도 인명피해가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6월 7일이 토요일이었어요.
아침 7시에 스터디가 있어서 6시 즈음 일어나려고 했는데 엄마가 소리치시는 게 들렸어요.
불났다고, 일어나라고.”
세영 군은 처음에 아침잠을 깨우기 위한 엄마의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열어둔 창밖으로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고 이내 실제 상황임을 알아차렸지요. 세영 군의 집은 13층이어서 바로 아래층인 12층에서
난 화재를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연휴 아침 느긋한 낮잠을 즐기던 다른 가구는 이 같은
상황을 알 리 없었습니다.
△웃음이 많은 세영 군.
영웅이라는 호칭이 아직은 어색하다며 또 한 번 웃는다.
생명을 살린 소년의 두드림
평소 회사에서 화재 훈련을 해왔다는 세영 군의 아버지는 아들을 붙잡고 신속하게 대피방법을 설명했습니다.
겁에 질려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누나와 엄마를 부축해 내려 보낼 것. 그리고 다음은 아직 화재사실을 모르는
이웃을 깨우는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위층(14, 15층)으로 올라가서 화재를 알리라고 하셨어요.
본인은 12층과 아래로 내려가시면서 깨우시겠다고.
그렇게 둘이서 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문을 두드리고 다녔어요.”
화재가 났음에도 당시 아파트에는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았습니다. 평소 잦은 오작동으로 경보기 민원신고가
이어지자 임의로 꺼뒀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직접 알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안 아버지와
세영 군은 층마다 뛰어다니며 위험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생활 속 작은영웅 박세영군 ⓒ국민대통합위원회
“집마다 비상벨을 누르고, 주먹으로 문을 때리면서 “불이야”를 외쳤어요.
그때는 무서움보다 한 가지 생각뿐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두드리는 이 소리를 듣고 제발 깨어나길.
우리 가족은 다 나왔는데, 저 안에 있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니까 꼭 빠져나오라고요.”
무서움보다 간절함이 더 컸던 시간. 하마터면 세영 군 역시 위험할 뻔했습니다. 방화문이 닫히면서 밀폐된 공간에
유독가스가 차고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세영 군을 비롯한 모든 가구가 한 사람의
피해자도 없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구원의 종소리같은 세영 군의 알림이 없었다면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을까요?
혼자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
“모두가 무사한 지 얼굴을 보고 확인할 때 너무 감사했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자습을 못 갈 것 같아서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서...
아, 창피해요.”
소방차가 화재를 진압한 후 돌아간 집. 발화점인 12층 가구가 모두 전소되고 세영 군의 집도 검은 재에 뒤덮였습니다.
모든 것을 순식간에 태운 화재의 참담함을 세영 군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날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불이 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지나가는 차의 경적 소리가 소방차
사이렌과 사람들의 비명처럼 들려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일을 겪으며 얻은 것과 깨달은 것도 있었습니다.
일단은 아파트 주민끼리 더 가깝게 왕래하게 된 것입니다.
“불이 나기 전과 아파트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서로 안부도 물어보고,
그때 참 고마웠다는 인사도 들었어요.”
△생활 속 작은영웅 박세영군 ⓒ국민대통합위원회
또 하나 ‘남을 위해 행동하는 것’의 가치를 다시금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도 ‘이기적인 사람은 되지 말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 화재를 겪으면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를 구하려고 행동하면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은 것입니다.
△프로선수를 꿈꿨을 정도로 열심히 했던 하키.
운동을 통해 다 같이 잘되는 협력을 배웠다고.
“팀이 같이 하는 운동을 오래 했는데요.
운동을 할 때도 팀을 위해 내가 손해를 보면 더 좋은 경기결과를 얻을 수 있었거든요.
혼자 잘되는 것보다 다 같이 잘 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우리는 입시로 인해 치열한 경쟁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걱정합니다.
하지만 세영 군처럼 ‘다같이 행복한 것이 좋다’고 말하는 어린 영웅들이 존재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화재현장에서 생명을 살렸던 노크소리처럼 또 한 번 우리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생활 속 작은영웅 박세영군 ⓒ국민대통합위원회
16년간 낙생고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아이들과 동고동락한 남은영 선생님. ‘딱 보면 다 알아’라고 할 만큼
학생들 지도에서는 베테랑 솜씨를 자랑합니다. 그런 선생님이 인정한 ‘의리남’이 박세영 군입니다.
화재 현장에서 한 일을 들었을 때도 “세영이 너라면 그럴 줄 알았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자기 것만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얘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어요.
괴롭힘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는 의협심도 짱이에요.”
인터뷰 내내 큰누나와 동생처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눌 정도로 막강한 친화력을 가진 선생님은 세영 군을 비롯한
36명의 반학생들에게 ‘학교 엄마’로 불립니다. ‘먹을 것 하나도 나눠먹고 편지어 놀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은
‘다같이 잘되자’는 세영 군의 생각에 날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