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cm'의 작은 거인
종이컵을 모아 기부하는 이금자 씨
△생활 속 작은영웅 이금자씨 ⓒ국민대통합위원회
어릴 적부터 선천성 왜소증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이금자씨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선행으로 ‘생활 속 작은 영웅 10인’에 추천받았습니다.
5년 전 강원도 원주시 새마을부녀회와 인연을 맺어 ‘종이컵 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그녀는
버려진 종이컵을 줍는 것만으로 주변을 변화시켰습니다. 버려지는 자원을 모아 자원을 순환시켰고,
소년소녀가장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으며, 시민들 스스로 종이컵 모으기에 동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102cm의 작은 키, 그러나 그녀가 보여준 영향력과 나눔은 누구보다 크고 넓습니다.
이금자 씨가 살고 있는 원주시 아파트는 아담했습니다.
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작은 방은 크고 작은 꽃들로 가득했습니다.
‘생활 속 작은 영웅 10인’에 선정되자 주변에서 보내온 꽃다발과 화분이었는데요.
평소 그녀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게 다 ‘종이컵 모으기’를 하면서 시작된 변화입니다.
그 전에는 지금처럼 이금자씨를 찾는 사람도, 칭찬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에게 보내는 냉정한 시선들, 힘들고 고된 생활. 그러나 묵묵히 자신의 삶을 지켜갔던
이금자씨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는 ‘작은 영웅’으로 우뚝 섰습니다.
△방안 가득한 축하 화분과 꽃다발. 수상소식을 축하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방안 가득 퍼졌다.
사람대접 못 받았던 지난 세월
올해 60세인 이금자씨는 왜소증이라는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초등학교 2, 3학년 때 연이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세상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이집 저집 떠돌아야 했던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도 삶은 녹록지 않았다고 합니다. 파출부 일부터 목욕탕 청소까지 생계를 위해
궂은일을 전전하는 것도 힘든데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던 건 외로움이었습니다.
사실은 몇 번이나 세상을 등지려고도 했었습니다.
△옛날이야기는 몇 번을 해도 그녀를 울게 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살기가 싫었어요. 몸이 이러니 마음이 더 아프더라고요.
내 인생, 끝까지 살아낼 수 있을까. 매 순간을 의지로 겨우 버텨왔어요.”
옛날이야기는 몇 번을 해도 그녀를 울게 합니다. 이 작은 몸으로 혼자서 얼마나 많은 가슴앓이를 했을지,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제 그녀가 우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할 일도 많고, 사랑할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삶의 안정이 자원봉사로 이어지다
이금자 씨의 생활이 안정된 건, 강원도 원주시 명륜2단지에 영구임대아파트를 얻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이때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보조를 받게 되면서 생계의 걱정을 덜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그때, 아파트 복지관의 권유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금자씨의 활동이 실린 회지와 신문들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난 학력도 없고 몸도 안 좋은데 뭐하려 부르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계속 피해 다니는데, 볼 때마다 같이 하자니까. 도대체 뭔가 싶어서 가 본 게 시작이었어요.”
원주 새마을부녀회와의 인연으로 시작된 봉사. 그중에서 그녀는 버려진 ‘폐종이컵 모으기’에 앞장섰습니다.
종이컵 모으기는 수고에 비해 소득이 적고 봉사자들도 힘들어해, 지지부진하던 사업이었습니다.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일일이 분리해야하는 일이라 힘들기도 하려니와, 무엇보다 더러움을 감수해야 하는
수고 때문에 다들 손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에 이금자씨가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종이컵으로 커피랑 물만 마시니까 깨끗할 것 같죠? 버릴 때는 담배꽁초에 온갖 쓰레기를 다 담아 버리거든요.
특히 여름에는 냄새에, 벌레까지, 모으기가 아주 힘들어요.
그래서 종이컵 가지러 갈 때는 일부러 깨끗한 옷은 벗어놓고 간다니까.”
그래 한번 끝까지 가보자!
누군가 해야 할 일, 이금자 씨는 굳이 피하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무시의 시선도 많이 받았습니다.
봉사의 일환으로 폐종이컵을 모은다고 말해도 믿지 않고, 안됐다는 시선으로 보거나
“그 몸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며 무례한 말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자씨는 속상하기보다 오기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못하는 일이라고 하니 오기가 생겼어요. 여기서 포기하면 내가 지는 거잖아요.
그러면 세상 모든 것에 지고 사는 거예요. 싸워서 이겨야 내 인생을 살 수 있다 생각했지요.”
△생활 속 작은영웅 이금자씨 ⓒ국민대통합위원회
1년 365일, 특별한 외출이 있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 아니면 금자씨는 하루 두 번, 종이컵 모으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번에 13~15kg를 수거해, 일일이 정리하고 새마을회가 가져갈 수 있도록 아파트 지하실에 쌓아두는 일이
올해까지 5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간 이금자씨가 혼자 모은 종이컵의 무게만 해도 2010년에 500kg,
2011년에는 3톤이나 됩니다. 이듬해인 2012년에도 4톤, 2013년에는 4.5톤을 수거했고,
2014년 현재까지는 3톤이나 되는 종이컵이 그녀의 손에서 정리되었습니다. 5년 동안 약 15톤,
수량으로만 환산해도 450만 개가 넘습니다. 한 사람이 한 일이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3.5g 종이컵이 만든 큰 변화
그녀가 앞장서서 이끌어온 ‘종이컵 모으기’는 이제 원주시에서 하나의 환경 운동으로 정착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누구나 ‘종이컵 모으기’ 운동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처음 시작했던 5년 전만해도
오물이 담긴 종이컵을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금자씨가 가지러오는 걸 알기 때문에
이왕이면 깨끗하게, 차곡차곡 쌓아두고 ‘기다린다’고 합니다.
“하루는 어떤 분이 종이컵이 담긴 상자를 주는 거예요. 다른 지역 사는 시어머님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자기 사는 지역의 종이컵을 모아 택배로 부치셨다는 거예요.”
△이금자씨가 혼자 모은 종이컵의 무게만 약 15톤
수량으로 환산하면 450만 개가 넘는다.
금자씨에게 주려고 일부러 모아두거나 받아두는 사람은 물론, 더 가져다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사람,
종이컵 더미를 옮겨주는 사람까지. 앞장선 금자씨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3.5g의 작은 종이컵이 금자씨의 인생을 바꾸고, 이처럼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요?
그녀는 지난 5년을 돌아보며 “나의 작은 몸짓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합니다.
나눌 때 도리어 치유받은 상처
이금자씨의 노력과 그녀가 만든 기적같은 이야기는 2013년 1월 12일 KBS 교양 프로그램
‘강연100℃’에 방영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녀가 진심으로 쓰고 절실하게 풀어낸 이 강연은
8월까지 방송된 역대 방송 중 가장 높은 재시청 횟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요즘은 새마을지도자로 매주 강단에 오르고 있습니다. “내 이름 쓰기도 버거웠던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희망으로 풀어내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방송에 나가면서 큰 기업이나 개인에게서 후원해주겠다는 연락이 많이 와요.
그러면 저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고 거절합니다.
저는 혼자 살고, 수급도 받으니까 생활에 크게 지장이 없거든요.”
△생활 속 작은영웅 이금자씨 ⓒ국민대통합위원회
실제로 그녀는 종이컵으로 만든 60만원의 돈(1년에 4톤 분량, 10kg당 1,900원)을 한 해도 빠짐없이
불우청소년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연을 다니며 얻은 수익도,
그녀를 위해 모금된 적지 않은 돈도 모두 기부로 돌렸습니다. 주변사람들이 받아서 모아두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요즘은 새마을지도자로 매주 강단에 오른다.
그곳에는 금자씨에게 희망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종이컵을 모으고, 힘든 아이들 도와주고,
강단에서 희망을 이야기 할 때마다 제 상처가 나아지는 걸 느껴요.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마음이 넉넉해서 큰돈이 필요 없고, 꿈을 전달할 수 있어 기쁘다는 이금자씨는 그 어떤 누구보다 행복해보였습니다.
고달팠던 과거조차 누군가의 희망이 되도록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그녀에게서 우리가 찾던 ‘작은 영웅’의 모습을 봅니다.
△생활 속 작은영웅 이금자씨 ⓒ국민대통합위원회
영웅의 날개(영웅과 함께 하는 사람들)
깨끗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이금자씨는 우리 사회의 영웅이 될 자질이 충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된 날 받았던 상처 때문에 마음까지 작아진 그녀를 지금의 자리에 이끌어준 것은 이 두 사람의 공이 컸다는데요.
강의 때마다 운전기사와 보디가드가 되어주는 원주새마을지부 이원희 사무국장과 티격태격 친언니처럼
금자씨를 아껴주는 김간난 부녀회장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금자 씨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자,
그녀가 날 수 있게 항상 붙어있는 양쪽날개가 되어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체력적으로 힘든 금자씨를 도와주며 특별히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주었습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인터뷰 자리를 찾은 이원희 사무국장은 “종이컵 모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하는 일”,
“후원해준다는 것을 전부 거절하는 것을 보면 몸은 작아도 그릇이 큰 사람”이라며 금자씨 칭찬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모은 건 버려진 종이컵이 아니라 숨어있던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마음이 아닌가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