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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에서 태극기를 본 로웰 2016.09.01
태극기에 관해서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로웰은 1884년 1월 경기도 관찰사가 한강변 별장에서 베푼 만찬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경기감영(京畿監營)에 들렀다가 그곳 문에 그려진 태극 문양들을 발견하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궁궐 외곽의 홍살문 꼭대기에 그려진 태극이었다.최초의 조기게양과 홈스의 태극기 사진 2016.08.25
조기 게양의 역사는 나라에 다라 다르고 게양 방식도 차이가 있다. 현재 우리의 경우, 현충일과 국장 또는 국민장의 경우에 조기를 게양한다. 대한제국 시대에도 장충단 제사, 황실 장례식에 조기가 게양됐을 것이다. 알렌이 집필한 『한국: 사실과 허구』 (Korea: Fact and Fancy)에는 주한외국공관이 1903년 3월 국장(國葬) 시 조기 게양 일수에 관한 규칙을 채택했다는 내용이 보인다.임시정부의 태극기 계승 2016.08.18
3·1독립운동이 대한민국 독립의 당위성을 세계에 선양한 태극기 시위였다면, 임시정부 수립은 대한민국 독립의 필연성을 엄숙히 선포한 태극기 시위였다고 할 수 있다. 태극기를 계승한 대한민국 통합 임시정부는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1945년 8월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26년 동안이나 독립운동 추진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세계 근대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자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노르베르트 베버의 『조선』 2016.08.11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영국인 롱포드가 『계림팔도물어』라는 책을 집필한 동안, 독일 뮌헨 근교에 위치한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1870~1956) 원장은 카메라를 들고 멸망한 조선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4년 후에 그는 『조선』(朝鮮: Im Lande der Morgenstille, 1915)이라는 책을 펴냈다.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2016.08.04
1987년 10월 29일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 헌법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삽입된 것이다.대한제국의 선포와 황제 즉위 2016.07.28
청일전쟁 후 조선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추락하고 일본의 위세가 거세지자, 러시아가 야심을 드러냈다. 조선 정부는 점차 친러시아적인 색채가 강해졌고, 일본은 1895년 조선의 왕비 시해라는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겁에 질린 고종은 1896년 2월 치외법권 지역인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윤봉길 의사와 태극기 2016.07.21
3·1독립운동 후에 미국과 소련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김구 주석을 위시하여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등 수많은 민족주의적 독립운동가들이 태극기 시위를 계속했다.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것을 태극기 앞에 맹세한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일왕을 폭사시키려다 실패하고 이슬이 됐다. 그러나 그분의 의거는 중국의 장개석 정부가 한국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계기를 만들었다.태극기는 한민족 모두의 국기 2016.07.12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날 감격과 환희의 도가니 속에 태극기 물결이 넘쳤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날 촬영된 감격과 환희가 넘치는 사진은 보이지만, 태극기 물결은 찾기 힘들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미 점령군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까지 일본군과 경찰이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미 점령군을 환영하는 우리 국민이 일본군의 총격을 받아서 사망하기도 했다.노블 태극기 2016.07.07
'노블 태극기'란 미국인 목사 아서 노블(William Arthur Noble, 1866~1946)이 소장했던 태극기다. 노블은 1892년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40년 이상 배재학당 교사, 평양·수원의 감리사(監理師: 지역 교회를 감독하는 직책)로 활동했다. 그는 양반집 아들과 부잣집 계집종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소설 『이화, 한국이야기』(EWA, A Tale of Korea, 1906년)를 펴내기도 했다.태극기 수난의 시작 2016.07.01
1894년 10월 6일 미국 화보주간지 하퍼스 위클리(The Harper's Weekly)는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삽화를 보도했다. 삽화에는 태극기와 일장기로 장식된 개선문이 크게 부각되고, 일본군이 문을 향해서 행진하고 있고, 주변에 많은 일본군이 집결해있다. 조선의 노인과 어린이 구경꾼도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