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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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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태극기를 계승한 대한민국
  • 등록일
    2016.11.10 14:59:04
  • 메시지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는 의미 있는 결의를 했다. 한반도를 독립시키기 위해서 남북한에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남한은 이 결의를 따랐으나, 소련은 북한지역에서의 선거를 거부하고 유엔 감시위원단의 입국도 금지했다.

  • 내용
    태극기 바로알기 태극기를 계승한 대한민국 -『우주를 품은 태극기』 이현표 지음-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는 의미 있는 결의를 했다.
    한반도를 독립시키기 위해서 남북한에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남한은 이 결의를 따랐으나, 소련은 북한지역에서의 선거를 거부하고 유엔 감시위원단의 입국도 금지했다.

    남한에서는 유엔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제헌의원 선출을 위한 총선거가 실시됐다.
    유엔감시위원단의 참관 하에 우리 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국회의원을 직접 뽑는 민주선거였다.
    1948년 5월 31일 민의에 의해서 선출된 198명의 제헌의원들은 제1차 회의를 갖고,
    이승만을 초대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우주를 품은 태극기』에서 발췌한 내용이며 하단에 동일내용 있음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년 8월 15일)ⓒ『우주를 품은 태극기』
     

    1948년 7월 17일에는 헌법이 제정됐고, 7월 24일에는 의회에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8월 15일에는 현재 경복궁 자리의 중앙청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음을 대내외에 공포했다.
     
     
    『우주를 품은 태극기』에서 발췌한 내용이며 하단에 동일내용 있음
    △이승만 대통령 연설(1948년 8월 15일)ⓒ『우주를 품은 태극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인 1949년 1월 7일 문교부는 국기제정위원회구성준비위원회를 소집했다.
    위원회는 2월 3일 입법부·사법부·학계·언론계·미술계·공공단체 등 각 분야에서 42인을 국기제정위원으로 위촉하고,
    1949년 2월 7일 국기제정위원들은 중앙청에서 첫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대다수의 위원들은 1)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태극기로 뭉쳐 일제와 싸웠고
    2)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태극기를 휘날리다가 혹은 태극기를 지키기 위해서 순국했으며
    3) 태극기는 한민족의 마음을 연결하는 단 하나의 상징이라면서 새로운 국기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우주를 품은 태극기』에서 발췌한 내용이며 하단에 동일내용 있음
    △코리아 그래픽(Korea Graphic)의 광복절 특집(1945년 8월 22일)ⓒ『우주를 품은 태극기』
     

    다수의 의견에 따라 국기 제정보다는 기존 태극기 도형과 규격을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짓고,
    국기제정위원회라는 명칭을 국기시정위원회(國旗是正委員會)로 변경했다.
     
     
    『우주를 품은 태극기』에서 발췌한 내용이며 하단에 동일내용 있음
    △외신기자들에게 태극기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이승만 대통령(1950년 7월 21일)ⓒ『우주를 품은 태극기』
     

    국기시정위원회는 모두 다섯 개의 도안을 심의에 올렸으며, 1949년 2월 23일 12인으로 구성된 특별심사위원회에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국기를 통과시켰다. 참고로 닷새 후 결정을 번복하는 소동이 있었으나,
    3월 25일 원안이 최종적으로 채택됐다. 국기시정위원회의 보고서는 1949년 10월 12일 대통령의 재가를 얻었고,
    10월 15일에는 문교부 고시 2호로 국기제작법이 공포됐다.

     
    『우주를 품은 태극기』 표지 앞면
    『우주를 품은 태극기』 표지 뒷면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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