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9월 20일, 알렌은 의료선교사(medical missonary)로 제물포에 도착했다. 미국 신시내티 소재 마이애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약 1년간 상하이에서 활동하다가 부인은 그곳에 잠시 남겨두고 혼자 조선 땅을 밟은 것이다. 당시 26세의 청년이었다. 그는 조선 주재 미국공사 푸트의 배려로 선교사 신분을 감추고 미국공사관 소속 의사의 자격으로 입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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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9월 20일, 알렌은 의료선교사(medical missonary)로 제물포에 도착했다. 미국 신시내티 소재 마이애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약 1년간 상하이에서 활동하다가 부인은 그곳에 잠시 남겨두고 혼자 조선 땅을 밟은 것이다. 당시 26세의 청년이었다. 그는 조선 주재 미국공사 푸트의 배려로 선교사 신분을 감추고 미국공사관 소속 의사의 자격으로 입국했다.
△호레이스 알렌 ⓒ『우주를 품은 태극기』
이후 알렌은 조선에서 약 20년간 외교관으로도 활약했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는 조선에 도착한지 75일 만에 발발한 갑신정변이다. 1884년 12월 4일 쿠데타 세력의 칼에 난자당한 24세의 민영익을 서양의술로 3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살려낸 것이다. 이에 왕실은 알렌을 극진히 대접했으며, 그의 명성은 고장난 시계를 고쳐달라는 사람이 찾아올 정도로 높아졌다.
△세브란스병원에 휘날리는 태극기와 성조기 ⓒ『우주를 품은 태극기』
알렌의 건의에 따라 조선정부는 1885년 4월 10일 광혜원(廣惠院, 서양식 병원)을 세웠고, 보름 후에는 제중원(濟衆院)으로 이름을 바꿨다. 제중원은 왕족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환자들을 치료했으나, 한때 경영 부진으로 허덕이다가 1904년에 세브란스병원으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