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태극기에 관해서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로웰은 1884년 1월 경기도 관찰사가 한강변 별장에서 베푼 만찬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경기감영(京畿監營)에 들렀다가 그곳 문에 그려진 태극 문양들을 발견하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궁궐 외곽의 홍살문 꼭대기에 그려진 태극이었다.
로웰은 1885년 5월 29일자 미국의 과학잡지 『Science』에 'The Hong sal mun, or Red arrow gate'(홍살문 혹은 붉은 화살문)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세계 과학잡지에 실린 조선에 관한 최초의 논문이다. 또한 그는 『조선』에서도 홍살문에 큰 관심을 보였다.
△홍살문에 관한 논문이 실린 학술지 『Science』 (1885년) 표지 ⓒ『우주를 품은 태극기』
"동아시아 사람들은 격식이라는 울타리를 쳐서 권위를 인정받으려고 한다. 따라서 높은 지위의 사람일수록 예의범절이 복잡하다. 이는 건축양식에서도 드러난다. 궁궐 입구에는 다양한 문이 존재하며, 가장 바깥쪽에 홍살문이 서 있다.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가진 홍살문은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늘의 피를 이어받은 왕의 권위와 신성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궁궐의 바깥에 홍살문이 세워지며, 궁궐을 본 따서 다른 공공건물에도 그 지위에 맞게 홍살문이 세워진다. 구조는 다르지만 일본에도 홍살문과 유사한 것이 있다.
홍살문의 가운데에는 사람의 눈처럼 야릇한 형상의 디자인이 보이는데, 두 개의 나선형 모양이 하나로 합쳐져서 원의 형태를 이룬다. 이것은 중국 철학에서 음양의 본질을 의미하며, 왕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를 암시하듯 홍살문 전체에 붉은색이 칠해져있다. 붉은색은 조선에서 왕을 상징하는 색이다.
△로웰이 촬영한 홍살문(위 한가운데에 태극 문양) ⓒ『우주를 품은 태극기』
높이가 10미터 안팎인 홍살문이 세워져있는 위치가 매우 인상적이다. 담벼락이나 건물에 이어져있지 않고 떨어져있으며, 건물과 연관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사당이나 궁궐 등과 같은 건축물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홀로 서있을 뿐이다.
홍살문은 보통 길의 양쪽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나는 행인으로 하여금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한다. 양쪽 기둥 사이의 거리는 도로 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미터 정도에 불과하나, 행인들은 모두 그곳을 통하여 지나가야만 한다." (로웰의 『조선』 262~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