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운동이 대한민국 독립의 당위성을 세계에 선양한 태극기 시위였다면, 임시정부 수립은 대한민국 독립의 필연성을 엄숙히 선포한 태극기 시위였다고 할 수 있다. 태극기를 계승한 대한민국 통합 임시정부는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1945년 8월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26년 동안이나 독립운동 추진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세계 근대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자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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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이 대한민국 독립의 당위성을 세계에 선양한 태극기 시위였다면, 임시정부 수립은 대한민국 독립의 필연성을 엄숙히 선포한 태극기 시위였다고 할 수 있다. 태극기를 계승한 대한민국 통합 임시정부는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1945년 8월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26년 동안이나 독립운동 추진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세계 근대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자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활용했던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5호) ⓒ『우주를 품은 태극기』
△홍범도 장군 ⓒ국민대통합위원회
임시정부의 활동과는 별도로 3·1운동 직후 만주 지역에서는 태극기를 앞세운 독립군의 항일무력투쟁이 본격화됐다. 1920년 5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봉오동 전투, 1920년 10월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청산리 전투에서 독립군은 일본군을 대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