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저자 노베르트 베버 신부 ⓒ『우주를 품은 태극기』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영국인 롱포드가 『계림팔도물어』라는 책을 집필한 동안, 독일 뮌헨 근교에 위치한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1870~1956) 원장은 카메라를 들고 멸망한 조선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4년 후에 그는 『조선』(朝鮮: Im Lande der Morgenstille, 1915)이라는 책을 펴냈다.
△베버의 책 『조선』의 표지 ⓒ『우주를 품은 태극기』
이 책에는 베버가 1911년 2월 21일 부산에 도착하여 같은 해 6월 24일 부산을 떠날 때까지 약 4개월간 조선에서의 생생한 체험담이 실려 있다. 더구나 아마추어 화가, 사진작가, 음악가였던 그는 이 책에 자신이 그린 수십 점의 삽화, 질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300장이 넘는 희귀한 사진, 심지어는 우리 노래 몇 곡을 채보한 악보도 담았다.
△베버의 『조선』 표지 안쪽의 태극 문양 디자인 ⓒ『우주를 품은 태극기』
흥미롭게도 베버의 『조선』은 책등과 앞뒤 표지의 안쪽이 태극 문양으로 디자인되었다. 또한 태극 문양이 새겨진 접시의 삽화가 '한국의 문장(紋章: Koreanische Wappen)'이란 설명과 함께 실렸다. 하지만 베버는 태극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런 궁금증은 베버가 여행을 마치고 우리나라를 떠나면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남긴 소감을 읽으면 풀린다.
"부산항에서 태풍으로 배가 출항할 수 없었기 때문에 10시간 동안이나 폭풍우를 바라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나기가 밝은 태양의 빛깔을 지워버릴 수 없듯이 내 마음 속에 새겨진 대한제국과 그 국민에 대한 밝은 기억도 결코 그 빛이 바라지 않을 것이다. '대한만세!', '대한이여 영원하라!' 이렇게 사라진 나라를 향해 작별인사를 외쳐보고 싶었지만,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한 민족의 국가는 멸망했으며, 아마 다시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파도 위로 말없이 손을 흔들어 순박한 국민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마 그들은 나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통치자들보다 외세의 통치 아래에서 더 행복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마치 하나의 민족을 매장하는 장례식을 마치고 귀향하는 느낌이 들었다."(베버의『조선』417쪽)
△'한국의 문장'(베버의 『조선』에 실린 접시) ⓒ『우주를 품은 태극기』
저자는 책에서 조선총독 데라우치를 칭찬하고 일제 식민통치를 미화하기도 했으며, 일제하의 한반도에 개신교가 득세하는데 대해 신부로서 위기의식을 표출하는 등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4개월 동안 그가 체험한 조선은 지구상에서 결코 지워져서는 안 될 아름다운 추억의 나라였다.
때문에 그는 '대한만세!', '대한이여 영원하라!'를 외치지 못한 대신, 태극기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자신의 책 중에서 독자들이 가장 주목할 만한 곳들을 장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