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3·1독립운동 후에 미국과 소련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김구 주석을 위시하여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등 수많은 민족주의적 독립운동가들이 태극기 시위를 계속했다.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것을 태극기 앞에 맹세한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일왕을 폭사시키려다 실패하고 이슬이 됐다. 그러나 그분의 의거는 중국의 장개석 정부가 한국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태극기 앞에 선 윤봉길 의사 (윤봉길 의사 기념관) ⓒ『우주를 품은 태극기』
특히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장개석 총통은 얼마나 감동했던지 "백만 중국 군대가 못한 일을 고려 청년 한 사람이 해냈으니 장하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만약 장 총통이 태극기 앞에서 권총수류탄을 들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할 것을 맹세했던 윤봉길 의사가 순국 전,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란 제목으로 아들 모순과 담에게 남긴 유서를 읽었다면, '백만'이 아닌 '모든' 중국 군대로 바꿨을 것이다.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그 유언 중 일부를 소개한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놓아라."
비록 외교적인 혹인 무력에 의한 독립투쟁 과정에서 용공과 반공으로 대립은 있었지만, 태극기는 이념을 초월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다지게 하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표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