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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0월 6일 미국 화보주간지 하퍼스 위클리(The Harper's Weekly)는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삽화를 보도했다. 삽화에는 태극기와 일장기로 장식된 개선문이 크게 부각되고, 일본군이 문을 향해서 행진하고 있고, 주변에 많은 일본군이 집결해있다. 조선의 노인과 어린이 구경꾼도 눈에 띈다.
1894년 11월 17일 영국 화보주간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도 하퍼스 위클리와 유사한 삽화를 실었는데 지면의 크기가 두 배나 된다.
△태극기와 일장기(하퍼스 위클리, 1894년 10월 6일) ⓒ『우주를 품은 태극기』
이 두 장의 삽화는 1894년이 우리 역사에서 매우 위태로운 시기였음을 시사한다. 일본을 비롯한 미국·러시아·영국 등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이 노골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1884년 갑신정변을 배후에서 조종하다가 실패했던 일제는 청나라가 힘없고 무기력하게 된 것을 계기로 10년 만에 한반도 지배의 마수를 본격적으로 뻗치기 시작했다.
동학혁명을 빌미로 군대를 파견한 일본은 1894년 7월 23일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강제로 친일내각을 구성했다.
7월 25일 성환에서 청나라 군대를 격파한 일본군은 다음날 아산만 풍도 앞바다에서 청나라 함대를 격침시키고, 8월 5일 마포구 공덕동 만리창에서 개선 행사를 거행했다.
△태극기와 일장기(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뉴스, 1894년 11월 17일) ⓒ『우주를 품은 태극기』
일본군이 청나라군을 물리치고 개선하는 장면을 묘사한 이 두 장의 삽화 속에 일장기와 함께 등장하는 태극기는 민족 시련의 서막을 알리는 태극기라고 불러도 결코 틀리지 않다.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이 일본의 전승을 축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조선 왕궁을 점령하고 친일내각을 조종했던 일제의 가증스런 선전 전략의 일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