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기가 태극기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태극기에 관한 이런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서 요즈음 근거 혹은 출처가 모호한 정보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널리 유포되고 있다. 우선 책과 언론에 나타나는 두 가지 사례를 보기로 하자.
"우리나라 국기를 태극기라고 부르게 된 건 바로 3·1운동 때부터입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만세를 부르며 전 세계에 한민족의 독립을 알린 3·1운동 당시 우리 민족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3월 1일 정오에 일제히 '조선국기'를 들고 나오기로 약속했습니다." (1999년 발간된 태극기 관련 청소년 도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37년 동안은 태극기가 아닌 '조선 국기'로 불렸다.
그러다가 3·1운동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33인의 민족대표들이 일본 경찰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선 국기라는 이름 대신 '태극기'로 부르자고 약속하면서부터 지금껏 태극기로 그 명칭이 굳어지게 된 것이다."(2013년 발행된 월간지)
그러나 이는 분명히 그릇된 정보다. 태극기라는 용어는 1896년에 이미 사용됐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증거들이 있다.
첫째, 1896년에 발간된 독립신문은 독립문 건립을 위한 성금을 모으면서 애국가를 여럿 소개했는데, 이중에 '태극긔' 혹은 '태극기'가 등장한다.
△1896년 10월 31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독립가' ⓒ『우주를 품은 태극기』
둘째, 독립신문은 1896년 10월 31일 '독립가'라는 노래 가사를 실었다. 작사자는 당시 조선 정부의 농상공부 주사 최병현(崔炳憲, 1858~1927)이다. 가사는 5절과 각각의 후렴으로 구성됐는데 제4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음양죠판 태극긔를 일월가치 놉히다니
죠션역시 구방이라 기명유신 차시로다
천지개벽의 상징인 태극기를 해와 달처럼 높이 달았으니, 조선도 비록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나라가 지속되려면 바로 이때 개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독립문 정초식 때 사용된 노래 가사 전단지 ⓒ『우주를 품은 태극기』
셋째,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기초공사 후 머릿돌을 설치하여 공사 착수를 기념하는 의식) 행사 때 사용된 전단지에도 태극기라는 명칭이 보인다. 그날 배재학당 학생들을 위해서 한지로 제작된 가로 31.6cm, 세로 23.8cm 크기의 전단지에는 '죠션가', '독립가', '진보가'등 세 곡의 노래 가사, 그리고 '환호'라는 만세 구호와 배재학당의 교호(校號)가 실려 있다. 이중에서 8절의 가사와 각각의 후렴으로 구성된 '독립가'의 마지막 절에 '태극긔'라는 단어가 보인다.
위의 사례들은 3·1운동이 일어나기 23년 전에 벌써 태극기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됐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또한 조선 정부가 1883년 태극기를 국기로 반포한 지 13년 후에 이미 우리 선조들이 조선 국기와 태극기라는 명칭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음을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다.
△안중근 장군과 동지들이 피로 만든 태극기 엽서(안중근 의사 기념관)ⓒ『우주를 품은 태극기』
한편 안중근 장군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 (1910)에도 '太極旗'(태극기)라는 단어를 볼 수 있다. 1909년 12명의 동지들과 각각 왼손 약지를 자르고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는 네 글자를 크게 썼다는 대목이다.
독립신문과 독립문 정초식의 전단지, 그리고 안중근 장군의 자서전에 태극기라는 명칭이 두루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태극기라는 용어가 3·1운동 때 처음으로 사용됐다고 하는 주장은 잘못임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