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통합위원회(위원장 한광옥)는 2016년 통합가치 문화 확산을 위해 사회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통합가치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 국민대통합위원회는 4대 갈등영역(계층, 세대, 지역, 이념)에 대해 학제적 논의가 중심인 「화합과 상생」포럼과 일상생활의 문화적·실천적 주제를 다루는「통합가치포럼」을 운영중
앞서 두 번의 포럼에서는 가족관계의 변화 양태를 분석하고, 가족 구성원간 소통의 중요성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5.17일, 5.24일 보도자료 참고).
지난 4월 29일 개최된 세 번째 포럼에서는 우리 사회의 갈등해결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배려”에 대해 논의하였으며, 그 주요내용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갈등을 녹이는 힘, 배려>
살다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갈등에 놓이게 됩니다.
마크 트웨인 이후 최고의 유머작가로 꼽히는 미국 작가 제임스 터버(James Thurber1894~1961)는 “인간은 배려를 통해 타인과 처음으로 깊숙이 만난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러한 배려는 법과 정의가 구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회통합적 가치입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이번 제11차 통합가치포럼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배려’가 갖는 의미를 함께 토론해 보았습니다. 배려란 무엇이고 이를 통해 얻는 사회적 가치는 어떤 것일까요.
발제 : “배려는 결국 나를 위한 것”
발제에 나선 이근미 작가는 배려의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잘못 이해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키워드가 되면서 배려는 마치 강자가 약자를 위해 양보해야 하는 의무처럼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인에 대해 이근미 작가는 “더 가진 자와 성취한 자들을 편법과 부당 지원의 수혜자로 보는 시선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렇다면 배려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다소 어렵습니다만, 발제자 이근미 작가는 교육철학자 넬 나딩스(Noddings Nel)의 배려윤리를 다음과 같이 인용 소개합니다.
‘배려란 타인의 감정에 대한 섬세한 돌봄이자, 안정을 원하는 나의 욕구이다’
즉 배려는 정의(Justice)가 갖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는 것이며, 이를 통해 이기적인 개인들이 빚는 갈등 현상들을 극복하기 위한, ‘나의 의지’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배려의 참된 의미는 결국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됩니다. 나는 상대에게 배려를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배려를 미덕으로 여기는 것은 ‘내가 이 사람의 처지라면..’이라고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속에서 우리 안에 선(善)한 본성이 우리를 하나로 연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의가 다 이루지 못하는 부분을 배려가 채워주는 것이고, 서로간의 배려가 서로에게 덕이 되어 나에게도 돌아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배려는 단순한 동정심을 보인다거나,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발제에서 이근미 작가는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 진정한 배려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배려는 배려하는 이와 배려 받는 이 사이에 섬세한 이해와 수용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발제에서 이근미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배려가 골고루 퍼지지 못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배려에 ‘권리와 의무’, ‘차별과 동정’이 끼어드는 건 금물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은 불만을 갖고, 한쪽은 배려를 하고도 압박감과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 이근미 작가의 발제문 中
배려는 오로지 자발성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근미 작가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들의 배려로 돌리는 행위도 부당하지만, 개인들이 배려로 해야 할 일을 국가가 의무로 정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배려는 배려 받는 자의 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배려가 의무인 것도 아니지만, 아담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우리 안에 서로 공감하고 연대된 도덕적 감정’은 배려를 권장합니다. 이근미 작가는 이러한 관계에 대해 “불편하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배려를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약한 사람,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짐으로 여기는 것은 더 큰 문제”라는 말로 배려가 가진 도덕성의 본질을 정리했습니다.
이근미 작가는 발제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미디어와 정치인들의 배려 없는 언행들도 지적했습니다. 특히 가족이 처한 문제나 여성의 신체, 외모를 희화하는 우리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그저 웃어넘기기에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유명한 모 개그맨은 한 가족 부모의 양육비 문제를 도가 넘게 희화화 했다가 방송에서 하차하기도 했습니다. 이근미 작가는 “풍자는 사라지고 약자들의 아픔만 후벼 파는 대한민국 코미디, 약자 조롱과 섹드립만 남은 개그 세상”이라는 세간의 평으로 배려 없는 우리 방송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자유토론Ⅰ :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
최승노위원(자유경제원 부원장)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타인에게 관대함과 친절을 베푸는 ‘관용의 정신’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실천하는 것이 필요함을 주장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공중도덕에 대하여 알더라도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최승노 위원은 ‘타인의 입장을 아는 것과 실제로 배려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최근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식당이나 카페 등의 공공장소에서 아기의 기저귀를 가는 것과 아이들이 뛰어다니게 놔두는 것이 직원들을 비롯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알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최승노위원은 배려를 촛불에 비유합니다. 한 개의 촛불이 켜지면, 그 촛불에 의해 또 하나의 촛불이 켜지고, 결국 수많은 촛불들이 빛을 나누면서 어둠이 물러가는 이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배려란 남에게 주문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실천해야 하는 도덕이 됩니다. 다만 최승노위원은 그러한 배려가 사회에 널리 퍼지려면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사회는 제로섬게임에 대한 인식이 강해져 각박하고 남을 생각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서로 믿지 못하는 약탈적 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데 경제성장은 계약과 배려의 선순환 고리를 만든다. 배려를 바탕으로 계약과 거래의 신뢰가 높고 이는 사회적 비용을 낮추며 다시 배려가 또 다른 배려를 낳게 한다.” - 최승노위원
자유토론 Ⅱ: “격(格)에 맞는 배려가 진정한 배려”
‘배려는 격(格)에 맞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토론에 참여한 황인희위원(두루마리 역사연구소 대표)은 ‘타인이 원하지 않는 배려는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함께, ‘배려도 법안에 있어야 함’을 지적했습니다. 어떤 이의 처지가 딱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원하지 않는 동정을 표시한다든지, 법이 인정할 수 없는 방법으로 배려를 베푸는 것은 모두 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황인희위원은 그러한 ‘격’에 맞는 배려는 먼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톨레랑스, 즉 관용을 베푸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틀렸다’라고 생각하는 점부터 바꿔야 관용에 의한 배려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타인의 생각이나 태도가 나와 다른 것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 배려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타인을 나와 같은 생각으로 끌어들이고 그 후에 위로해준다고 그것이 배려가 될 수 없다. 타인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내가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과 태도를 존중하는 것 그 자체가 배려인 것이다.”- 황인희 위원
자유토론 Ⅲ: “배려는 가르치고 교육되어야 한다”
끝으로 배려는 교육을 통해 달성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토론에 참여한 배진영위원(월간조선 차장)은 일본인들의 화(和)정신을 거론하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말을 일본인들은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받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한 배려의 정신은 스스로 터득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도덕률로 성립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배위원은 지하철의 노약자석에 젊은이들이 앉지 않게 된 배려의 질서를 그러한 교육의 성공사례로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어떤 방법으로 타인에 대해 배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는 것은 모든 문명사회의 기본이었다. 중국 춘추시대를 살았던 공자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가르쳤다. 그로부터 500년 뒤에 중동 유대 땅에서는 예수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고 제자들에게 일렀다. 비슷한 시기 유대교의 랍비 힐렐도 똑같은 얘기를 했다.“ - 배진영 위원
배려는 사회 통합의 바탕입니다. 배려가 없는 사회는 와해될 수밖에 없고, 배려가 없는 정의사회는 삭막한 사회입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의 통합가치포럼에서는 우리 사회에 배려가 통합의 가치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 점을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에 전파하고 실천하는데 더욱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