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웰은 한겨울에 여행하는 것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국왕을 비롯한 조선인들의 환대에 만족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최초로 고종을 사진 촬영하는 행운을 얻었고, 다수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412쪽 분량의 『조선』에는 스물다섯 장의 희귀한 사진이 각기 전면(Full Page) 크기로 실려 있고, 목판화 열세 점과 지도 두 점도 포함돼 있다.
△로웰이 촬영한 고종황제ⓒ『우주를 품은 태극기』
△로웰이 촬영한 조선 외교부 관리들ⓒ『우주를 품은 태극기』
로웰의 조선은 귀중한 역사적인 자료집일 뿐만이 아니라, 외국인이 집필한 우리나라 여행기들 중에서 문학적으로 가장 빼어난 기행문이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로웰이 조선에서 멀어져가는 배 위에서 봉화를 보고 석별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내용이 보인다. 이는 두명의 조선인에 대한 사랑과 우정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아주 멋진 글이다.
"홀로 갑판에 서서 떠나온 조선을 회상하는데 갑자기 밤의 장막을 뚫고 새빨간 공 모양의 불꽃 두 개가 솟아올랐다.
둘은 아주 밝고, 엄청나게 크고,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부산의 봉화였다. 한참 동안 난간에 기대어 두 눈으로 두 개의 불꽃을 응시하다보니 불꽃 속의 영혼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밤새 나를 돌봐줄 조선의 영혼이었다. 두 영혼은 내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다.
꼼짝 않고 나는 둘을 바라봤고, 그들도 움직이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무심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꺼지지 않는 두 개의 불꽃은 나의 존재 속으로 타들어 갔다. 어느새 늦은 밤이 되어 망상에서 깨어났다.
엄습해오는 바다의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 천천히 몸을 돌리자, 둘은 붉은 빛을 발하며 사람의 눈빛처럼 따라오면서 작별인사(FAREWELL)가 아니라, 이국(異國)으로부터의 밤 인사를 내게 건냈다. '안녕히 주무세요(GOOD-NIGHT)'라고!"(조선397~398쪽)
위에서 두 개의 불꽃 중 하나는 계손향일 것이다. 그러면 또 하나의 불꽃은 누구일까? 그는 홍영식(洪英植, 1855~1884)임이 분명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