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통합위원회 / 윤주경 위원님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이사
·(사)매헌 윤봉길 월진회 이사(현)
·제10대 독립기념관 관장(현)
계절이 완연한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거리의 풍경이 갈수록 푸르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싱그러워지는 나무들이 하나 둘씩 싹을 틔워내고 있는 것인데요, 겨우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추운 날씨를 버텨내던 나무가 봄, 여름을 거쳐 스스로를 푸르게 단장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든든한 뿌리가 땅 속 깊숙이 박혀 양분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민족 역사의 뿌리, 독립기념관
이러한 나무뿌리의 개념은 국가와 민족의 범위에까지 확장해볼 수 있습니다. 뚜렷한 민족정체성과 애국심, 그리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 민족은 설사 나라를 잃거나 전쟁과 같은 큰 위기를 겪더라도 단단한 뿌리의 힘으로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뿌리와 애국심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곳이 바로 충청남도 천안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입니다. 어린 시절 한 번쯤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경험이 있을 독립기념관은 지난 1987년 국민모금운동을 통해 건립되었습니다. 독립박물관은 관람객들에게 나라사랑의 의미를 되새겨주며 호국보훈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기관입니다.
△독립기념관 전경 ⓒ통통기자단 김성훈 기자
초기에는 건물이나 전시물이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점차 민간에서의 유물기증과 민관 차원의 발전 노력이 이어져 양적, 질적인 발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은 각 시대와 테마 별로 7개의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고 2.6ha 규모에 달하는 아름다운 연못과 정원과 야영장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독립기념관은 관광객들에게 진지하고 무거운 민족사적 담론뿐만 아니라 편안히 자연을 즐기며 쉴 수 있는 공간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에 견학 온 아이들 ⓒ통통기자단 김성훈 기자
△독립기념관 내부 모습 ⓒ통통기자단 김성훈 기자
윤주경 위원을 만나다.
현재 이곳은 윤주경 독립기념관장님의 지도하에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통통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는 독립기념관장이신 윤주경 위원님을 만나 인터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윤주경 관장님은 유명한 독립운동가이신 윤봉길 의사의 손녀이시고 국민대통합위원회의 통합가치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음은 윤주경 위원님과의 일문일답입니다.
△윤주경 위원님 ⓒ통통기자단 김성훈 기자
Q. 본 인터뷰는 국민대통합위원회 블로그에 게재되어 많은 방문객들에게 읽히게 될 예정입니다. 독자들을 위한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네. 저는 국민대통합위원회 통합가치분과의 위원 및 독립기념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주경입니다. 오늘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제가 특별한 사람이어서라기보다는 선열들의 목숨을 건 헌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대통합위 통합가치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제안을 발의하고 어떠한 활동을 하고 계신지, 특히 통합가치분과에서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A. 위원으로서 대통합위원회에서 열리는 회의나 외부 방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은 자신의 관심사와 전문분야에 따라 각기 다른 분과에 소속되어 활동하게 되는데, 그 중 통합가치분과는 미래지향적인 통합가치를 도출하는 분과입니다. 사실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미래지향적인 통합가치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민이 많았습니다. 미래를 지향해야 하지만 기본을 완전히 벗어나서는 안 되지요.
저는 독립기념관도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애국심’을 그 기본과 뿌리에 단단히 고정해 둔 상태에서만 보다 멋진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통합위 통합가치분과 활동을 하면서 ‘북 콘서트’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청년층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하는데 요즘 드는 생각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독립기념관이 새로운 전시물이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는 것도 결국 청년들을 포함한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주기 위함입니다.
통합가치분과에서는 이른바 대통합을 위한 ‘작은실천’으로 탈북청소년들과 함께 국내역사탐방을 하고, 통일염원탑에 학생들과 방문하여 종을 치는 기회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생각할 수 있는 통합의 가치를 이렇게 작지만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독립기념관의 취지와 부합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Q. 위원님께서는 유명한 독립운동가이신 매헌 윤봉길 선생의 손녀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가족, 친지분들에게 전해들은 윤봉실 선생님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A. 굉장히 수줍음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눈도 잘 못 마주치고 소심한 사람. 하지만 야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시는 등 학업에 관심이 많으셨는데요. 16세에 아내, 제게는 할머님과 결혼하신 뒤에 정서적으로 굉장히 많은 의지를 하셨다고 해요. 조부께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신 뒤로는 여건상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하셨는데 할머님을 굉장히 의지하셨고, 그래서 가끔 집에 들르실 때에 자녀들에게 ‘너희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으니 아버지가 없어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부인에 대한 믿음과 존중을 가지고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하셨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아주 무심하셨던 분은 아니에요. 병이 난 딸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딸을 업은 채 몇 시간을 달리며 고생하셨던 일화나 자녀들에게 남긴 다정한 편지 등을 보면 조부님은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셨습니다.
Q. 요즘 취업난 등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위원님께서는 그동안 대학특강 등을 통해 윤봉길 의사가 지녔던 정신과 의의 등을 여러 차례 말씀해 주셨는데요, 오늘날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윤봉길 의사로부터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까요?
△윤주경 위원님 ⓒ통통기자단 김성훈 기자
A. 조부님도 결국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오빠이며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부님을 어느 날 갑자기 불의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 행동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 과정에는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이 땅의 젊은이로서 자기 시대를 고민하고, 시대극복을 위해 노력해보고, 혼자서 되지 않으니 동네 사람들과 야학을 통해 농촌계몽운동도 하고, 나름대로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식민지배를 벗어나야겠다, 독립을 해야 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임시정부로 가서 활동을 하게 되신 것이지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 조부님께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해요. 한국의 독립은 당시까지만 해도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행동에 나섰고, 의거 후 체포되어 취조를 받을 때에도 한국 독립이 가능할 것 같냐는 질문에 ‘세계 대세가 움직일 때 반드시 독립이 될 것이고 자신은 그것을 조금 앞당기는 역할을 한 것’이라고 답하셨다고 합니다.
다언불여.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지 말은 필요치 않다’는 뜻이지요. 저는 이것이 조부님을 의미하는 가장 적절한 말이라 생각해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비록 어려운 현실이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인생을 고민하며 무엇보다도 ‘행동’을 한다면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전 국민이 모두 알고 있는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손녀로서 책임감이 매우 크실 듯합니다. 훌륭한 조부를 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때때로 불편함이 있지는 않으셨나요?
A. 저는 집에서보다 골목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아요.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를 자랑하고 싶었지만 이웃 아주머니나 학교 선생님들께서 ‘너의 행실이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부모님과 할아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하시는 말을 듣고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물론 때때로 부담스럽기도 하고 숨고 싶었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친구 어머님께 ‘저런 애랑 놀지 마라’는 말도 들었어요. 내가 누군가의 손녀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경험으로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의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우리나라에 빈부갈등, 정치갈등, 사회갈등 등 갈등이 참 많지요. 보다 발전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이 서로 화합하는 대통합이 매우 중요할 텐데요, 위원님의 견해는 어떠신가요?
A. 이러한 갈등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며칠 전에 깨달은 것이, 갈등이라는 것은 마치 칡덩쿨이나 등나무덩굴과 같은 것 같아요. 등나무덩굴은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칡덩쿨은 왼쪽으로 올라가는데, 그래서 이 둘이 만나면 꼬여져서 풀어지지 않게 되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들이 서로를 해치려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단단한 결속을 바탕으로 높고 튼튼한 기둥을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서로의 마음에서 욕심을 조금 덜고 양보하며 상생을 위해 걸어 나가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화합의 길입니다.
Q. 위원님의 독립기념관 운영 철학은 어떠신가요?
A. 독립기념관 설립은 국민이 부여한 임무입니다. 민족문화 정체성을 확립하고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하는 것이 그것이지요. 그래서 독립기념관은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우리민족의 역사와 근대의 독립운동기 등 역사적인 사실과 지식을 전달하는 통로로도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 내부를 관람하는 아이들 ⓒ통통기자단 김성훈 기자
하지만 저는 독립기념관이 오직 지식 전달의 통로로만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기자님도 오시면서 보셨겠지만 독립기념관 부지가 상당히 넓고 자연경관이나 운치가 굉장히 좋아요. 국민들에게 역사교육의 장인 이곳을 한 번 방문하고 끝나는 곳이 아닌, 시간이 날 때마다 거리낌 없이 방문하여 멋진 자연경관을 가족,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독립기념관의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독립기념관 ⓒ통통기자단 김성훈 기자
Q. 마지막으로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과거 활동하셨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보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세계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마음과 눈, 귀를 모두 열고 포용적인 자세를 보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이 바로 이 대한민국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죠. 모국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당당한 자세로 세계인과 함께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고 그런 세상을 열어가는 데 젊은이들이 맡을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만 잘 살자고 했던 것이 아닌 세계평화, 보편가치추구를 목적으로 했던 과거의 독립운동처럼 우리의 젊은이들도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땅, 이 세계를 더 살기 좋은 공간으로 바꾸어 가는데 최선을 다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이를 돕기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고자 합니다.
△독립기념관 중앙에 위치한 겨례의 탑 ⓒ통통기자단 김성훈 기자
독립기념관의 멋진 풍경 속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현장취재였습니다. 윤주경 위원님의 말처럼 청년 윤봉길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희망의 끈을 이 시대의 젊은이들도 그대로 이어받아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전변하는 데에 큰 역할을 맡아주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