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팔도물어』 표지의 태극기 디자인은 단순히 문양이라고 하더라도 보기에 거북하다.
괘의 배치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고, 의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바탕색을 흰색으로 처리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롱포드는 책의 시작 부분에 태극기를 설명하는 성의를 보였다.
"책표지에 보이는 디자인은 대한제국의 국기다. 태극기는 일장기와 전혀 달라 보이지만, 그 아이디어의 근본은 유사하다. 가운데의 음양은 중국 철학에서 우주 본래의 모습이자, 자연에 내재된 남성과 여성-완전과 불완전-을 나타낸다. 네 귀퉁이의 온전하거나 단절된 선들은 8괘 중에서 4괘를 표시한 것이다.
△『계림팔도물어』에 실린 고종과 순종황제ⓒ『우주를 품은 태극기』
원래 8괘는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3,300년 전에 생존했던 중국의 복희(伏羲)황제가 고안한 것인데, 황해에서 솟아오른 용처럼 생긴 말의 등위에 새겨진 문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자연의 모든 활동과 사물을 상징하는 8괘는 점을 치는 데도 활용됐다. 8괘 조합의 해설서인 역경(易經)은 기원전 1122년에 편찬됐다.
태극기에는 4괘가 등장한다.
1) 세 개의 양효로 이뤄진 건(乾)은 양, 남성, 하늘 2) 세 개의 음효로 이뤄진 곤(坤)은 음, 여성, 땅 3) 두개의 양효와 하나의 음효로 이뤄진 리(離)는 양의 상징인 불, 태양 4) 두 개의 음효와 한 개의 양효로 이뤄진 감(坎)은 음의 상징인 물, 비, 구름, 샘, 강을 나타낸다. 또한 4괘는 동서남북의 방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위와 같은 설명 이외에 롱포드는 이 책에서 태극기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1882년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배 위에서 태극기를 최초로 제작할 때 참여했던 영국인 애스턴이 태극기와 특히 일장기에 관한 연구논문을 1894년에 펴냈다는 사실이다. 이에 관해서는 앞에서 소개했다.
△『계림팔도물어』에 실린 남대문ⓒ『우주를 품은 태극기』
롱포드는 본문이 총 383쪽 분량인 계림팔도물어에서 임진왜란에 관한 부분에 60쪽이나 할애하고,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상세히 소개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을 하자면 이 책의 포커스는 충무공에게 맞춰졌다고 할 수 있다.
롱포드는 이순신 장군이 중상모략에 능한 부패한 관리나 지휘관들과는 달리 평소 유비무환의 자세로 철저하게 전쟁에 대비했음을 높게 평가했다. 나아가 거북선이 철갑선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충무공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한 전함을 만들어 풍전등화의 전세를 뒤집어 놓았다고 극찬했다.
△『계림팔도물어』에 실린 김옥균ⓒ『우주를 품은 태극기』
무엇보다도 그는 이순신 장군이 적에게 장군기(將軍旗)를 단 한 번도 빼앗기지 않았고, 영국의 넬슨 제독처럼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장렬하게 전사했음을 강조했다. 결국 롱포드는 이순신 장군처럼 결코 깃발을 빼앗기지 않은 위대한 지휘관이 구한말에 있었던들 일제가 감히 태극기를 빼앗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책표지의 태극기 디자인으로 대신하고 있다.
참고로 『계림팔도물어』에는 구한말 사진이 33장 실렸다.
이들 중에서 태극 문양이 뚜렷한 남대문과 김옥균 사진은 서구인이 집필한 다른 책에서 보기 힘든 희귀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