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대한제국 군대해산은 1907년 형식적으로는 종료됐으나, 실질적으로는 해산된 것이 아니었다.
극소수 매국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과 장병들은 주권을 되찾으려고 절치부심했기 때문이다.
의병은 바로 이런 염원을 대변하는 우리 민족의 실질적인 군대였다.
『대한제국의 비극』은 그들에 관한 더없이 소중한 정보와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해산된 군대와 산악의 사냥꾼으로 구성된 의병이 턱없이 부족한 무기로 일본군과 접전하여
승리를 거둔다는 소문은 맥켄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기자정신에 투철했던 그는 장교들의 훈련과 지휘 아래
지형적인 이점을 살려서 일본 군대와 전투를 벌이는 의병을 찾아 나섰다.
△적십자기(맥켄지 촬영) ⓒ『우주를 품은 태극기』
맥켄지가 방문한 이천충주제천은 일본군에 의해 폐허가 됐고,
일장기와 일본군의 총검 아래 놓여 있었다.
원주를 경유해서 양근(현재 양평군)으로 간 그는 태극기가 아닌 깃발 10여 점이 집 위에 게양된 곳을 발견한다.
거리 양쪽 점포들의 닫힌 문에도 흰 종이에 붉은 잉크로 그려진 기가 붙었다.
일본군의 만행에 대비해서 만든 적십자기(赤十字旗)였다.
△의병(맥켄지 촬영) ⓒ『우주를 품은 태극기』
그곳에서 맥켄지는 의병들을 만났다.
대한제국 군복, 한복 등 각양각색의 초라한 의복을 입고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은 구식 총으로 무장한 의병들을!
그는 감동했다.
희망 없는 전투와 죽음을 목전에 둔 그들의 눈과 얼굴에 불굴의 의지와 불타는 애국심이 충만한 것을 보고!
△의병(맥켄지 촬영) ⓒ『우주를 품은 태극기』
의병들은 맥켄지에게 돈은 얼마든 줄 테니 무기를 구해달라고 간청했으나,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또한 의병이 알고 싶어하는 일본군에 관한 정보도 제공할 수 없었다.
부상병들을 치료해주고, 앞날을 축복하며 헤어진 다음날 맥켄지는 인근 주민들로부터 하루 전의 끔찍한 얘기를 듣는다.
"무기도 없는 의병 부상자 두 명이 총상을 입고 유혈이 낭자한 채 쓰러졌는데,
심한 고통 속에 신음하듯 '대한만세'를 되뇌었어요. 곧 일본군이 오더니 총검으로 목숨을 끊고도 찌르고 또 찌르더라고요.
저희는 갈기갈기 찢긴 시체를 가까스로 모아 묻어주었습니다.
당시 '대한만세'나 '태극기'는 악랄한 일본군 앞에서 끔찍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