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러는 상표에 나타난 태극 문양이 첫 눈에 보기에는 나선형으로 감긴 것처럼 보이지만, 분석해 보면 곧 이런 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상표의 태극 도안이 매우 단순한 형태임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내용
태극기를 대할 때마다 항상 아쉬운 점이 있다.
우리는 세계 각국의 국기 중에서 태극기가 가장 심오하고 뛰어나다고 말하지만,
예나지금이나 정작 그에 걸맞은 홍보를 하고 있는지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학적인 지식을 동원해서 태극기를 설명한 책들도 있고, 정부에서 발행한 홍보물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태극기 홍보보다 국내외에 보급되는 태극기에 앙증맞은 홍보물을 곁들여서 배포할 수는 없을까?
이런 점에서 1세기 전에 태극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상표를 만들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북태평양철도회사 간부들의 홍보 마인드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특히 이 회사의 홍보 팸플릿 '태극 이야기'가
미국과 세계인들에게 태극기와 조선을 알리는데 기여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 회사는 태극 문양을 상표로 활용하면서 태극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표의 아이디어가 태극기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조선의 채널을 통해서 정보를 얻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태극 문양이 조선의 독창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를 휠러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태극에 관해서 북태평양철도회사에 처음으로 명백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한 인물은 홀트(W. S. Holt) 목사다.
그는 감리교 목사로 12년간 중국에서 활동을 하면서 태극 문양과 그 의미에 정통하게 됐던 인물이다.
귀국 후 오레곤주 포틀랜드시에 거주하던 그는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북태평양철도회사 사무실 창문에 페인트로 그려진 태극 상표를 목격했다.
신기하게 생각한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 일반승객 담당 찰튼 부소장에게
태극 문양의 성격과 그 의미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그 후 회사는 홀트 목사의 도움으로 귀중한 정보를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됐고,
비로소 올바른 방향의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상표의 역사' , 7~8쪽)
휠러는 상표에 나타난 태극 문양이 첫 눈에 보기에는 나선형으로 감긴 것처럼 보이지만,
분석해 보면 곧 이런 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상표의 태극 도안이 매우 단순한 형태임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즉, 큰 원(圓)의 수직 지름 위 중간을 기점으로 작은 원을 마주 보게 그리되,
작은 원의 지름은 큰 원 지름의 절반 길이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태극 상표의 개괄적인 모습이 된다고 설명한다. (97쪽 그림 참조)
이어서 휠러는 동양 고유의 사상 혹은 원리를
형이상학적인 도형으로 표현한 태극 도형의 탄생 일화를 다음과 같이 흥미롭게 소개한다.
"11세기 초, 중국에서 주돈이(周敦頣, 1017~1073)라는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자연에 심취해서 산과 계곡을 유람하기를 좋아했는데,
이런 취미생활이 북태평양철도회사 상표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
청년 주돈이는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희한한 동굴을 발견한다.
산을 관통하는 동굴이었는데 양쪽에 입구가 있었다.
입구들은 이중(二重)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었고, 동굴 자체는 그 속이 보름달처럼 둥글었다.
주돈이가 후일 태극 도형을 발전시킨 것은 바로 이 동굴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3,000년(주돈이가 태극 문양을 발견하기 4000년 전)에 중국 전설의 제왕 복희(伏羲)는 8괘라는 철학체계를 만들었고,
주돈이는 그 체계를 도형으로 설명한 것이다."
휠러는 태극 문양이 조선이나 중국뿐만 아니라
아메리칸 인디언의 구슬 세공품 및 토기, 스코틀랜드의 문장(紋章)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을 삽화로 소개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일관되게 'Tah-Gook'(태극)이라는 우리말의 영문표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