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1896년 9월 2일 고종의 탄신 45주년 경축연회가 독립관에서 열렸다. 주인공인 고종이 참석하지 않은 행사였지만, 수많은 태극기로 장식된 행사장에는 1,000여명이 모여 애국가를 부르고 왕실의 안녕과 조선인의 자주독립을 기원했다.
△호레이스 언더우드 ⓒ『우주를 품은 태극기』
행사 기획자는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 목사였다.
그의 사망 2년 후 부인이 펴낸 『조선의 언더우드』 (Underwood of Korea, 1918년)에는 그날 행사에 관한 언급이 보인다.
△언더우드의 『한국의 소명』 표지 ⓒ『우주를 품은 태극기』
"남편과 나는 조선 국왕의 45세 탄신일이 언제인 줄은 알고 있었으나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이틀 전에야 겨우 생각이 났다. 시일이 촉박했지만, 남편은 단 1초도 아끼며 축하행사를 준비했다. 1,000명을 수용 가능한 서울 북쪽의 건물 사용허가를 얻었고, 연단이 세워졌으며, 행사장 건물과 주변은 많은 태극기들로 꾸며졌다. 단상에는 오르간과 귀빈들을 위한 의자가 놓였다. 건물 안은 참석자들로 가득 찼고, 밖에도 수많은 인파가 운집해서 긴 행렬을 이뤘다. 조선의 외국인 선교자들도 거의 참석했다. 탄신 축가행사는 조선 방방곡곡에 기독교를 홍보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조선의 언더우드』 163~165쪽 요약)
△언더우드 동상 ⓒ위키백과
1885년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1858~1902)와 함께 미국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조선에 온 언더우드는 조선 교회에 최초로 태극기를 게양했던 선구자이자 연희전문학교 창설자이기도 하다. 그는 1890년 『한영문법』, 『한명자전』을 펴냈으며, 1908년에는 책표지가 태극 문양으로 장식된 『한국의 소명』 (召命: The Call of Korea)도 발간했다.
언더우드의 부인은 남편보다 여덞 살 많은 의사였다. 문학적 감성도 뛰어나 『조선의 언더우드』 이외에 태극 문양으로 표지를 장식한 책 『상투를 튼 조선인들 사이에서 15년』(Fifteen Years Among The Top-Nots, 1904년)도 펴냈다.
△언더우드 부인의 『상투를 튼 조선인들 사이에서 15년』 표지 ⓒ『우주를 품은 태극기』
독립신문은 1896년 9월 3일 고종 탄신 경축연을 보도하면서 "조선인이 임금과 국기를 자기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고, 나라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남의 나라가 1년에 10보도를 나가면 조선은 20보를 가려고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9월 5일에는 아래와 같은 기사도 실었다.
"제물포의 각국 군함들이 대군주 폐하 탄신일에 조선 국기를 높이 달고 예포 21발씩을 발사했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임금의 탄신일인데 국기를 달 줄 모르고, 남이 예포를 발사하는데 답례할 줄도 모른다. 언제라야 조선 사람들이 김치와 고추장을 잊어버리고,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것을 창피하다고 생각하게 될는지 알 수 없다."
출처: 『우주를 품은 태극기』, 이현표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