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의 역사'에서 휠러는 우선 태극 문양이 철도회사의 상표로 채택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북태평양철도회사의 상표로 사용되는 특이한 디자인이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거기에 정말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지 궁금해한다. 즉, 상표의 기하학적이고 독창적인 도안이 어쩌다 우연이 탄생됐는지, 아니면 그것의 기원과 의미, 그리고 상표로 채택되는데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나름대로의 이야깃거리와 역사가 있다.
△'상표의 역사'(1910년)의 태극기 ⓒ『우주를 품은 태극기』
'상표의 역사'에서 휠러는 우선 태극 문양이 철도회사의 상표로 채택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북태평양철도회사의 상표로 사용되는 특이한 디자인이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거기에 정말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지 궁금해한다. 즉, 상표의 기하학적이고 독창적인 도안이 어쩌다 우연이 탄생됐는지, 아니면 그것의 기원과 의미, 그리고 상표로 채택되는데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나름대로의 이야깃거리와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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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철도회사가 태극 문양을 발견하고 상표로 채택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93년이다. 그 발견과 채택의 공로는 회사의 수석 엔지니어 맥헨리(McHenry)와 고객·티켓 매니저 채스피(Chas Fee)에게 있다. 당시 회사는 상표를 제작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때문에 여러 디자인이 검토됐으나 모두 적합하지 않아 폐기됐다.
△시카고 세계박람회 조선관 ⓒ『우주를 품은 태극기』
그런데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를 찾은 맥헨리가 우연히 조선관에 들렀다가 태극기의 기하학적인 디자인에 홀딱 반했다. 그에게 태극기는 단순하면서도 감동을 주고, 평범하면서도 사람의 눈을 끄는 매력이 있는 국기였다. 그 순간 맥헨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회사가 상표에 활용하려고 찾았던 상징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약간만 수정하면 쉽게 상표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선 것이다.
시카고에서 본사로 돌아온 그에게 한 통의 우편물이 배달됐다. 채스피가 자신의 제도실에서 공들여 만든 몇 개의 상표 디자인들을 보내온 것이다. 맥헨리는 채스피에게 자신이 세계박람회에서 베껴온 조선의 태극기 도형도 상표 아이디어의 하나로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북태평양철도회사 로고 ⓒ『우주를 품은 태극기』
자신이 보고했던 디자인들보다 태극기에 더 감동을 받은 채스피는 태극 모형 아래에 'Yellowstone Park Line'(옐로우스톤 파크 라인)이란 문구를 추가하여 상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접는 방식의 홍보 팸플릿에 활용함으로써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반응이 예사롭지 안았다. 모든 사람들이 태극 문양의 상표에 호감을 표시했고, 곧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이로써 태극 문양응 파산으로 위탁관리 하에 있던 북태평양철도회사의 상표로 채택되었으며, 에드워드 애덤스 이사장은 위탁관리에서 벗어난 신규회사의 공식 문장(紋章)으로 승인하고, 회사의 증권에도 새겨 넣도록 지시했다.
△북태평양철도회사 로고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상표가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게 되자, 맥헨리는 자연스레 태극기를 발견했던 상황을 돌아보며 거기에는 분명히 동양적인 심오한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생각만 한 것은 아니고, 조용히 태극기에 담긴 의미에 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서적들을 검토해봤지만, 당시로서는 태극과 괘의 의미에 대해서 참고할 만한 자료를 찾기 힘들어 연구는 지지부진했다.
△북태평양철도회사 로고 ⓒ『우주를 품은 태극기』
그 사이에 상표는 문서, 편지지 및 봉투 등 문구류, 각종 홍보물에 인쇄됐고,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의 대도시에 위치한 회사 매표소의 문과 창문에 사용됨으로써 행인들은 그 독특한 디자인에 주목하게 됐다" ('상표의 역사', 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