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통합위원회 신임 위촉 위원 메시지
- 신영무 위원 -
막내딸이 중학교 3학년이던 때입니다.
“아빠, 나라가 썩어가는 것 같아.”
“무슨 소리니?”
깜짝 놀라 되물었지요.
“학교에선 아이들 모두 잠만 자. 공부는 밤에 학원에 가서 하고. 남학생들은 선생님한테 막 덤벼들어. 그런데도 선생님들은 뭐라고 하지 않고 피해 버려.”
그 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전까지 나는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에 대해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충청남도 당진 출신으로 넉넉하지 못한 힘든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실제로도 그런 과정을 거쳐 온 셈이지요. 산업화 시대 초기 과외라는 말도 없던 시절 열심히 공부해 명문 고등학교를 거쳐 제일 어렵다는 대학 법과 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몇 명 뽑지 않던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와
변호사를 거쳐 미국 유학까지 가 세계적인 명문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까지 받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우리 친구들도 길은 조금씩 다르지만, 열심히들 노력해서 저마다 뭔가를 이루고 나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노력이 모여 우리나라가 6.25 이후의 전란 폐허에서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의 발전을 이룩했다는 자부심을 가졌지요.
지인들과 ‘나라발전연구회’를 결성해 활동해온 것도 다 이런 마음자세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사랑하는 딸이, 또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는, 살아가야 할 우리나라는 그동안 우리가 꿈꾸고 믿어왔던 그림에서 엄청나게 어긋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나는 교육과 국가발전의 상관관계에 대해 보다 더 깊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18년 전 막내딸과의 그 대화가 결국 지금의 나를 국민대통합위원회까지 이끌었는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국민대통합위의 갈등현안진단 과제로 나는 ‘공교육(초중고)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부담 완화’를 제안했습니다.
국민통합을 가로막는 갈등은 우리 앞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그러나 그 갈등의 성격을 냉정히 분석해보면 보다 명확한 실체가 드러납니다. 가장 많은 국민들에게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국가 사회에 중대한 도전이 되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갈등과, 그보다 덜 중요하고 현상적인 갈등은 큰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 단계에서 나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갈등이 우리 사회의 2개 분야에 집중적으로 밀어닥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나는 교육 분야이고, 다른 하나는 반부패 법치주의의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산업화 시대 우리 세대에게 공평한 계층 상승의 기회와 함께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총체적 능력을 길러주는 데 성공했던 교육은 지금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면서 사회는 활력을 잃고 국가의 성장엔진마저 급속히 식어가고 있습니다. 과도한 사교육비에 눌려 기성세대는 건강한 경제생활의 토대를 잃어가고, 젊은이들마저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고 회피합니다. 이전에 국가성장을 견인하는 유능한 인재를 육성하던 성공적인 교육시스템은 점점 더 폐쇄적으로 바뀌어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국민대통합을 가로막는 가장 본질적인 갈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은 반드시 풀어내려는 사람, 국가, 사회에게는 도전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가 바로 이런 도전과 당당히 맞서는 데에, 모자라지만 그동안 쌓은 나의 경험과 판단이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