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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의병대장 윤희순
최초라는 타이틀은 대개 비범한 사람들에게 붙기 마련입니다. 이달에는 여성 독립투사분들을 주제로 소개드리고 있는데요. 오늘 포스팅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항일 의병 지도자 윤희순 의사입니다.
윤희순 의사는 30여명의 부녀자를 모집해 음식, 옷, 무기 등을 조달하며 의병들을 지원했으며 직접 의병훈련에도 참여했습니다. 또한 항일 운동 뿐만 아니라 의병가를 8곡이나 창작, 보급해서 반일의식을 고취시키고 의병들의 사기를 돋우는 역할까지 소화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윤희순 의사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 해보겠습니다!
최초의 여성의병 지도자, 윤희순
△윤희순 의사의 초상화 ⓒ네이버 지식백과
윤희순 의사는 1860년 경기도 구리에서 유학자 집안의 큰 딸로 태어났습니다. 평범한 유년을 지내온 그녀는 16세 되던 해, 고흥 유씨 집안의 유제원과 결혼하였습니다. 유제원은 춘천의 의병장 유홍석의 장남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결혼 직후부터 강원도 춘천 남면 발산리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춘천시립도서관에 있는 윤희순상 ⓒ춘천시립도서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났고, 이에 분노한 유생들은 친일내각과 일본세력을 타도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이듬해 단발령까지 발표되자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윤희순 의사의 시아버지 유홍석도 춘천유림들과 의병운동에 나서게 됩니다. 아마도 그녀는 이때부터 의병운동에 뜻을 두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한 시아버지와 남편이 의병운동으로 집을 비운 사이에도 의병부대를 위해 식사 대접과, 의복 제공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항일운동 열정과 안사람 의병가
윤희순 의사는 마을 여성들을 모아 놓고, “나라를 구하는 데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고 역설하며 의병들을 도울 것을 권유했답니다. 여자라도 나라를 사랑할 줄 알며, 남녀가 유별해도 나라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여자도 의병을 적극적으로 도울 뿐 아니라, 의병 활동에 참여해야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안사람 의병가’를 지어 부녀자들에게 전파했습니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처음에는 선뜻 나서지 못했으나, 그녀의 열성에 차츰 감화되어 점차 의병 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 [안사람 의병의 노래] [경고한다 오랑캐들에게] 사본 ⓒ국가보훈처
<안사람 의병가>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 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 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의병 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 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 시정 받들 소냐.
우리 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의병군가>
나라없이 살수없네 나라살려 살아보세
임금없이 살수없네 임금살려 살아보세
조상없이 살수없네 조상살려 살아보세
살수없다 한탄말고 나라찾아 살아보세
전진하여 왜놈잡자 만세만세 왜놈잡기
의병만세
이렇게 여성들의 지원에 힘입어 윤희순 의사는 향촌 여성 76명으로부터 군자금 355냥을 후원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놋쇠와 구리 등을 구입해 직접 탄약 제조소를 운영해 의병단에게 총과 탄약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춘천 가정리 여성 30여명으로 구성된 여성 의병단을 조직했으며 의병들의 끼니와 의복을 조달하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직접 남장을 하고 정보수집에 나서기도 하였답니다.
1910년 일제가 나라를 강점한 이듬해 윤희순 의사는 가족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지속합니다. 그녀는 중국에서 운영자금을 모금하여 ‘노학당’을 설립하였습니다. 노학당에서는 반일 정신을 가지고 애국 운동에 힘쓸 50여명의 인재를 육성, 배출 했습니다. 이어 윤희순 의사는 중국 여러 마을을 돌며 모금 활동 및 애국 정신 전파에 앞장섰습니다.
1913년에 시아버지 유홍석이, 1915년에는 남편 유제원이 2년의 간격으로 별세했습니다.
비극이 연달아 일어났지만 윤희순 의사는 개의치 않고 독립 운동을 계속 했습니다.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두 아들 중 큰 아들 돈상이 중국 푸순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했고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윤희순 의사는 ‘해주윤씨 일생록’ 집필한 후 단식을 진행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나이 76세 였습니다. 사후에 그녀는 1983년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답니다.
또한 그녀의 제2의 고향 춘천에서는 그녀를 주인공으로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으며, 그녀를 기리는 추모콘서트도 열렸습니다.
△ 창작뮤지컬 ‘윤희순’ ⓒ강원도민일보
△ 윤희순 추모콘서트 ⓒ강원도민일보
여성의 지위는 낮았고,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수동적인 삶을 영위했던 전통적인 여성들...그들과는 다르게 윤희순 의사는 적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사회적인 틀을 깨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했던 그녀의 삶을 본받을 수 있도록 우리도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