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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독립투사의 어머니 - 김 락
이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바로 2014 국가보훈처에서 발표한 남, 여 독립운동가의 비율입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율이 적으며 유관순 열사 이외에는 딱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성 독립운동가분들을 소개할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우선 독립투사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가진 김 락 여사를 소개하겠습니다.
독립운동가라면 으레 남성, 여성이라면 신여성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김 락 여사는 전통명가의 안주인입니다.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에 이어지는 독립운동가 3대를 지켜나간, 스스로 항일투쟁에 앞장 선 전통여성의
장엄한 역사가 여기에 있습니다. ‘민족의 딸, 아내, 그리고 어머니’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양반집 막내딸 김 락
그녀의 부모는 4남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를 금지옥엽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던 중 김 락 여사가 15세 되던 해 갑자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근심걱정이 없었고 행복했습니다. 아버지 김진린(金鎭麟·1825~95)은 감사를 보좌하는 도사(都事)라는 종5품 벼슬을 지냈고 마을(안동시 임하면 내앞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집을 ‘도사댁’이라 불렀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보살펴주던 노비만 해도 수 십 명이 되었다 합니다.
집안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다복하게 자란 그녀는 당시 양산군수로 있던 이만도의 장남 이중업과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결혼 6년 만에 시어머니를 잃었고, 시아버지는 1896년 을미의병 당시 예안의 의병장을 맡았습니다. 그녀의 남편, 시동생, 그리고 모든 집안 종복까지 의병에 가담하게 되었을 때, 불안하고 심산했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김 락 선생의 예상 이미지 ⓒ EBS
그녀의 독립운동에 관한 일화는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일제가 쓴 일제가 쓴 '고등경찰요사'에 ‘안동 양반 이중업의 아들 이동흠이 "내 어머니가 3ㆍ1운동 때 일제 수비대에 끌려가 두 눈을 잃고 11년 동안 고생하다 돌
아가셨으니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결코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라는 기록이 딱 넉 줄 적혀 있을 뿐입니다.
김 락은 57세의 나이에 예안면 만세운동에 나섰다가 일본군 수비대에 붙잡혔고, 취조를 받다가 두 눈을 잃는
참극을 당했습니다.
그 후 남편과 동흠, 종흠 두 아들의 항일투쟁을 귀로 전해 들으며 고통 속에 여생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독립운동 유공자 28인, 그 중심에 그녀가 있었다.
35년 동안 시가와 친가 모두 독립운동을 하며 일제와 싸웠습니다. 그 한 가운데 그녀가 있었고, 그녀를 중심으로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이 펼쳐졌습니다. 시댁 친정 사위 등 모두 합치면 28명의 독립유공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 많은 분들 중 몇 분을 간략히 소개 하겠습니다.
그녀의 시아버지 이만도, 이만도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고 곧바로 단발령 조치가 내려지자 한 해 뒤인 96년 1월 ‘예안(선성)의병’을 일으켰습니다. 1월13 일 발송된 ‘예안통문’(예안지역 223명의 이름으로 작성)의 주창자 가운데 대표인물이 그였습니다.
시아버지의 동생인 이만규와 33세였던 남편 이중업도 그때 의병활동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상주 함창에 일본군 병참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만도를 주축으로 하는 예안의병이 이 부대를 공격했습니다. 일본군은 이에 대한 분풀이로 안동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게 됩니다. 그해 4월2일 안동시가지는 일본군에 의해 모두 불태워지고 5월에 들어서는 퇴계종가와 청량산 오산당, 의병소가 있던 온혜 삼백당이 불탔습니다. 이만도는 1905년 11월 을사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린 후 일원산에 들어가 산나물로 목숨을 이어갑니다. 시간이 흘러 1910년, 나라가 망하자 그는 24일 단식 끝에 순국했습니다.
큰 오빠(김대락)과 아들들(이동흠, 이종흠)역시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독립투사였습니다. 그녀의 사위는 김용환 선생인데 익숙한 이름이죠? 맞습니다. 광복 70주년 특집인 파락호의 비밀 편의 주인공 김용환 선생과 동일인입니다. 직계가족 모두가 독립유공자였던 전통명가의 안주인으로써 가족들의 독립운동을 도와주고 직접 실행까지 했던 그녀에게 독립투사의 어머니라는 별칭이 부족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안동에서 2010년부터 고택과 자연경관을 무대로 한 창작뮤지컬 ‘락아 나라를 아느냐?’는 그녀와 그녀의 시아버지 이만도 선생을 독립운동 일대기를 주제로 만들었습니다.
△고택관광뮤지컬 락 나라를 아느냐 공연 ⓒ 안동국악단
△고택관광뮤지컬 락 나라를 아느냐 공연 中 ⓒ 안동국악단
마지막으로 시 한편 소개하며 마무리 해볼까 합니다.
나라의 녹을 먹고도 을미년 변란 때 죽지 못하고
을사년 강제 조약 체결을 막아 내지 못했다며
스무나흘 곡기를 끊고 자결하신 시아버님
아버님 태운 상여 하계마을 당도할 때 마을 아낙 슬피 울며
하루 낮밤 곡기 끊어 가시는 길 위로 했네
사람 천석 글 천석 밥 천석의 삼천 석 댁 친정 큰 오라버니
백하구려 모여든 젊은이들 우국 청년 만들어
빼앗긴 나라 찾아 문전옥답 처분하여 서간도로 떠나던 날
내앞 마을 흐르던 물 멈추어 오열했네
의성 김 씨 김진린의 귀한 딸 시집와서
남편 이중업과 두 아들 동흠 중흠 사위마저
왜놈 칼 맞고 비명에 보낸 세월
쉰일곱 늘그막에 기미년 안동 예안 만세운동 나간 것이
무슨 그리 큰 죄런가
갖은 고문으로 두 눈 찔려 봉사 된 몸
두 번이나 끊으려 한 모진 목숨 11년 세월
그 누가 있어 한 맺힌 양가(兩家)의 한을 풀까
향산 고택 툇마루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흰 구름에 말 걸어본다
머무는 하늘가 그 어디에 김락 여사 보거들랑
봉화 재산 바드실 어르신과 기쁜 해후 하시라고
해거름 바삐 가는 구름에게 말 걸어본다.
이윤옥 시인의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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